요며칠 시편기자는 역사를 노래한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외우기 위해서 노래를 지어 부른다. 조선의 왕들을 외우기 위해 태정태세문단세를 나리나리개나리 운율에 맞춰 불렀다. 확실히 노래는 암기에도 군가처럼 공동체정신을 불러일으키는데 도움이 된다.
시편기자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면서, 주의 권능을 찬양하고 선포하면서,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주의 구원과 돌보심을 자랑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런 노래를 지어부르는 이유는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짓는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의 기이한 일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않은 , 그래서 불순종한 조상임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을 대적에서 구원하신 그 주님의 인자와 권능에 다시 목을 매는 것이다.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들을 구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그당시 백성들만 불러야할 노래가 아니라 자손대대로 불러야 할 노래고 우리도 불러야 할 노래다.
시편기자는 생뚱맞게 3절에 정의를 지키고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전체 구성상 뭔가 흐름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복은 정의와 공의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그렇게 못산다. 주의 은혜와 인자가 필요한 이유다. 정의와 공의로 산다면 굳이 옛일을 노래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을 노래하면 될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의 은혜와 인자가 필요하다. 인생의 항해를 광야를 지나감 같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주의 은혜와 인자를 노래하는 것이다.
복이 있는 사람은 정의를 지키고 항상 공의를 행하려는 사람들이다. 주의 선하심과(은혜와) 인자를 암기하고 노래하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