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4:4

시편 104:4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개역개정)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신 분,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새번역)

바람을 시켜 명령을 전하시고 번갯불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며, (공동번역)

He makes winds his messengers, flames of fire his servants. (NIV)

He makes the winds His messengers, Flaming fire His ministers. (NASB)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시고 불과 화염을 대사로 임명하셨습니다. (메세지)

창조주 주님은 삼위로 일하신다. 특별히 성령께서 이땅에서 바람과 불로 우리를 주님의 일에 초대하신다. 바람으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고 불로 (깨달은 말씀을) 순종할 수 있도록 주님의 힘을 공급해 주신다.

(그러나 바람을 거스리면 불타 없어질 것이 또한 인생이다.) 창조주 주님이 다스리신다. 눈을 들어 자연도 보고 삶을 보면 주님을 노래하게 된다.

에스라 10:9-44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성전 앞에 모인 이들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큰 비로 인한 추위로 떨어야 했다.

제사장 에스라는 말했다.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여인과 통혼하고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했다고. 이방 여인과 통혼한 것만 죄가 아니고 다른 죄에 이방 여인과의 통혼이라는 죄를 더한 것이라고.

여기서 에스라는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저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이방 여인들을 끊어 버리라고 명했다. 온 회중은 에스라의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이 일이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니 이 일을 전담할 담당자를 세우고 날을 정해 (이방인과 통혼한 자는) 고을별로 지도자들과 함께 따로 와서 등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때, 요나단, 야스야가 일어나 반대했고, 므술람과 삽브대가 요나단과 야스야에 동조했다. (이들이 반대한 것은 추후조사였을까? 당장 현장에서 큰 비를 맞아가며 일을 처리하고자 했을까?)

결국 이방통혼 조사는 열번째 달 초하루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첫째 달 초하루가 되어서야 마쳤다.

통혼자 명단은 1차 귀환자의 영적 지도자 예수아의 자손 다섯명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이방 아내를 내보내고, 속건제로 죄를 속했다. 그리고 이방통혼자의 명단이 끝까지 이어진다. 이들중에는 이방아내에게서 자녀를 낳은자도 있었다.

// 요나단, 야스야, 므술람, 삽브대의 소수의견에 관하여 사관은 침묵한다.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또 숙제를 받고 넘어간다. 철두철미한 회개란 무엇인가?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여인을 끊어 버리라’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떨어야 한다. 큰 비로 떨게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느껴야 한다. 죄악은 끊어 버림으로 선은 행함으로 우리 삶을 구별해야 한다.

// 에스라는 ‘율법을 (다시) 민족에게’ 라는 기치를 내걸고 귀환했지만 조상들과 다르지 않았다. 실패였다. 답은 율법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손이다. 에스라는 자신이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손(능력)을 힘입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은혜가) 에스라로 하여금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게 했다.

//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의 삶에도 끊어 버려야 할 죄악이 많다. 그러나’ 하지 말아라’ 로 될 일이 아니다. 낙심하고 아니하고 힘써야 할 선한 일이 참 많다. 소극적으로 죄를 끊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시는 손길을 구해야 한다.

//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생뚱맞게 에스라서 묵상의 갠적 결론이다.

에스라 10:1-8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울며 기도하며 (민족의) 죄를 자복했다. 떨며 에스라에게 모였던 백성들도 통곡했다. 통곡소리가 제사장의 나팔소리로 들렸을까 백성들이, 어린 아이들까지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 앞으로 (에스라에게) 큰 무리가 모였다.

무리중에 있던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방여자와 통혼 하였지만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아직 소망이 있다.

스가냐는 주의 교훈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경외하며 (떨며) 준행하는 에수라의 가르침에 따라 통혼한 아내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안약을 세우고) 하나님께 약속하고 (앞으로는) 율법대로 살 것을 맹세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힘써 도울 것이니 이 일을 주관해 달라고 에스라에게 요청했다.

에스라는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맹세에 동의 하느냐고 안건을 상정했고, 무리는 동의한다고 맹세했다. 백성들의 동의를 구한 에스라는 성전 방에 들어가 (골방에서) 민족의 죄악을 근심하며 식음전폐 금식을 한 후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다.

삼일의 말미를 주었다. 삼일 안에 (귀환자들 중 통혼의 죄를 지은 자들은) 지도자들의 훈시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와서 등록하라. 오지 않으면 재산을 빼앗고 귀환자 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고 했다.

// 하루 아침에 고아와 과부를 양산하는 적용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을까? 에스라서를 읽을 때마다 하는 고민이다. 죄를 범하게 하는 눈을 빼고, 손을 자르고 천국 가는게 낫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죄를 짓게하는 나의 마음을 도려낼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니, 결국은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지, 눈을 빼고 손을 자르라고만 적용하면 우리는 사지없는 몸뚱이만 남지 않을까?

// 에스라는 성전 (골)방에서 이런 (잘못된 것만 잘라내려는) 귀환자들의 (잘못된?) 태도를/도 근심한 것은 아닐까?

// 또 답이 없는 질문만 던진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방여인과 그 소생을 내보내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마라’ 고 하셨을 것이다.

에스라 9:9-15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불순종의 결과는 종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포로지에서 돌아오고, 성전을 재건하고 유다 예루살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후에 또다시 계명을 저버렸으니 입이 열개라도 핑계댈 수 없었다.

조상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경고하셨음에도 계명을 저버렸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조상의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셔서 백성을 남겨 두셨는데…다시 계명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통혼하였으니 이번에는 진멸당함의 형벌을 받아도 싸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중 누가 의로우신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에스라의 고민은 깊다.

의로우신 주님 앞에 율법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율법으로는 죄인됨만 깨달을 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해주시기만 기다려야 하나.

에스라와 떨며 모인 사람들. 복음이 필요하다.

에스라 9:1-8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이라는 에스라의 개혁은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귀환한 백성들이 그 땅에 살고 있던 이방민족과 결혼을 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했다. 더군다나 개혁에 솔선수범 해야할 지도자들이 이 일에 앞장섰다. 이 보고를 받은

에스라는 기가막혔다. 오호 통재라. 가슴치며 애통해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분노를 눌러야 했다. 하나님 말씀, 즉 율법을 회복시키려는 개혁에 에스라와 함께 동참했던 사람들은 (이같은 죄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에) 떨며 에스라에게 모였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시간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사죄의 기도를 드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공동체의 죄악을 고백했다. 조상들의 죄악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 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 회생되는 듯 했는데…

// 개혁에 동참해야 할 지도층의 타락. 관행이었다고, 깨끗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세상. 편한 것, 좋은 것을 (돈과 명예) 위해 바른 것을 (정의와 공의) 뒷전으로 미루는 세상. 떨며 주님 이름으로 함께 모여야 한다. 함께 순종의 제사(예배)를 드려야 한다. (롬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