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6:1-12

유브라데강 서쪽 총독의 상소로 시작된 성전재건에 대한 다리오 왕의 진상규명은 철저했다. 그냥 주변 사람 몇몇에게 묻고 답하지 않았다. 기록실을 샅샅이 뒤져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내었다. 놀랍게도 조서에는 1장에서 언급하지 않은 성전의 규모며, 비용조달 방법까지 자세히 명시되어 있다.

다리오 왕은 진상조사를 마치고, 닷드내,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 그리고 아바삭 사람들에게 성전재건 현장에 접근하지 말고 공사를 막지도 말라고 명령했다. 대신 유다 총독과 장로들에게는 원위치에 성전재건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성전 재건에 필요한 비용을 왕실에서 내기로 한 고레스의 조서 내용을 구체화한 조서도 내렸다. 신속히 행할지니라.

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것도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결과요, 다리오 왕의 조서도 마찬가지다. 다리오 왕은 새로 내린 조서에서 ‘하나님(신)’ 이라는 단어를 다섯번 사용한다.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을 믿었을리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참 하나님(신)을 믿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께 쉬 감동되는 겸손함을 갖게해달라고. (하나님을 안다하나 원망과 불평의 목이 곧은 사람이 위정자가 되는 것도 재앙이다.)

에스라 5

성전 기초를 다시 놓은지 십년이 훨씬 넘도록, 방해공작으로 중단 되었던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등장은 낙심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선지자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은) 한번의 예언으로 그치지 않고 유다 사람들과 성전 재건 현장에 머물며 지속적으로 도왔다. 보혜사 역할을 했다.

성전 재건이 재개되자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유브라데강 이쪽 (서쪽) 총독이 관리들과 예루살렘에 와서 건축허가를 누구에게 받았는지 시공사 직원 명단을 요구하였다. 하나님 말씀이 도우시는 힘은 놀랍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지도자들은 성전재건을 중단하지 않았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사년정도 지나면서 유브라데강 서쪽 총독이 바뀌었는지 성전 재개에 대한 역사는 잊혀졌었다. 그러나 포로지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유다 장로들은 진상을 보고하였고 유브라데강 서쪽 총독은 조목조목 적어 (7-17) 다리오 왕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글을 보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이) 함께하자 성전 재건을 하는 유다 백성들은 담대해졌다. 무대포나 막무가내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알고, 바른 일을 순종하는데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진상을 모르면) 현상만 보고 성전재건이 예루살렘이 폐역한 성읍의 본색을 드러내고, 반역을 도모하는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논리로 십년 이상 성전 재건은 발목잡혔었다. 다행히 진상에 대해 듣는 귀를 가진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아바삭 사람이 등장했다. 하나님의 섭리라 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길이 보인다.

에스라 4:11-24

에스라서 기자는 성전 재건의 중단 이유로 시간상으로는 뒤에 있은 일이지만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성벽 재건 금지 국민청원 내용을 공개했다. 이와 비슷한 국민청원이 성전 재건 때도 있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국민청원의 내용은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하면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아닥사스다 왕에게 바치지 않아 왕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국민청원을 하는 자신들은 왕의 은덕을 입고 살기 때문에 왕이 손해보는 것을 (수치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은 그 자체로 패역한 성읍이라고 덧붙이며 역사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자칫 (유다가 독립하면) 제국의 땅도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성벽재건 중지를 명하소서.

아닥사스다 왕은 국민청원에 답을 했다. 역사서를 통해 예루살렘이 옛적에 제국을 대적한 일이며, (아마도 다윗과 솔로몬 때)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던 성읍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다음 조서를 내릴 때까지 성벽재건을 중단하라고 조서를 내렸다.

국민청원에 앞장섰던 르훔과 서기관 심내는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재건을 강제로 중지 시켰다. 이와같은 방해 공작으로 성전 재건도 다리오 왕 제 2년까지 중단되었다.

// 국민청원제도가 바사제국에도 있었다. 좋은제도도 악용될 소지가 많다. 특별히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주판 알을 튕기면서 이익만 추구하는 탐욕적 접근이 얼마나 많았을까. 바른 것, 선한 일을 위한 국민청원제도가 이권 다툼, 권력 다툼으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바른 일이 중단 된다. 그러나 방해 공작에도 끝까지 달려가야 할 길이 있다.

에스라 4:1-10

포로지에서 돌아 온 사람들이 성전 재건 기공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땅에 살고 있던 백성들이 동참하겠다고 나왔다. (에스라서 기자는 이들을 분명하게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규정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앗수르 왕에 의하여 이주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사마리아 인이다. 이들은 자신들도 유대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찾는다고 (예배한다고), 또 제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족장들은 단호하게 그들은 성전 재건과 관계 없다고 말했다. 고레스 왕의 조서에 핑계대며 유대인들만이 성전을 재건가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자들은 그즉시 본색을 드러내고 성전 재건을 방해했다. 대성통곡과 환호의 함성이 울려퍼지던 성전 재건 기공식을 마치자마자 성전 재건 공사는 다리오 왕 때까지 중단되었다. 대적들이 바사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건축 시공허가를 내주지 않아서였다.

에스라 기자는 이런 방해 공작이 성전재건 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있었던 방해공작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기록하며, 아하수에로 왕 때도, 아닥사스다 왕 때는 분명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적었다. 아닥사스다 때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내가 고발한 공문을 보면, 청원에는 디나 사람, 아바삿   사람, 다블래 사람, 아바새 사람, 아렉 사람, 바벨론 사람, 수산 (당시 바사의 수도?) 사람, 더해 사람, 엘람 사람을 비롯하여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 사람들이 총망라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은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면서 이뤄낸 성취였다.

성전재건은 다리오 왕때까지 14년 정도 중단되었었다. 고레스왕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전 재건 기공식까지 마쳤는데 공사가 중단되었으니 귀환자들이 얼마나 낙심했을지 상상이 안된다. 대적들은 손을 약하게 했지만 마음마져 약해질대로 약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때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들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귀환자들은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으면서도 낙심으로 포기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낙심하여 포기할 이유가 없다.

 

에스라 3

예루사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각자의 성읍에 살았다. (2:70) 일곱째 달이 되었다. 일곱째 달은 유월절을 첫달로 하는 율법을 받기 전에는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다. 요즘의 9월 10월쯤 시작하니 서양에서의 학사력도 여기에 뿌리는 두나 궁금해 진다. 일곱째 달에는 속죄일이 있고 초막절이 있는 달이다.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자의 성읍에 (어느정도) 정착하자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착하기 위해 율법의 절기를 따르기로 한 것 같다. 예수아를 비롯한 제사장들뿐 아니라 총독의 지위였던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까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율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행했을 것이다.

귀환한 무리들은 그 땅을 차지 했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두렵기는 했지만 성전터에 제단을 세우가 번제를 드리며 율법에 기록된대로 초막절을 지켰다. 에스라서의 기자는 일곱째 달 첫날부터 번제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성전 재건을 시작하기도 전에 임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석수 목수를 사서, 또 시돈과 두로 사람을 사서 성전 재건을 위한 건축자재를 운반해 왔다. 이렇게해서 귀환한 다음해 둘째달이 되어서야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다. 성전 공사는 이십세 이상의 레위사람들이 감독하였다. 제사장 예수아가 아마도 총감독, 그리고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감독이 되었다.

건축자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주를 찬양하며 기공식을 하였다. 찬양으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모든 백성이 기초가 놓임만 보고도 주를 찬송하며 크게 즐거워 하였다. 첫 성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족장들은  대성 통곡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기쁨의 외침과 통곡이 어우러져 멀리서도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 나이 많은 사람들은 왜 대성통곡을 했을까? 이전 영광에 비해 초라한 성전의 모습을 보고 통곡했을까? 이것만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불순종으로 성전을 지키지 못했던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큰 기쁨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대성통곡할 노릇이 얼마나 많은지. 대성통곡은 하나님 앞에 서면 터져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다. 회개의 눈물이든 은혜의 눈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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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사람들은 왜 대성통곡을 했을까? 이전 영광에 비해 초라한 성전의 기초만을 보고 통곡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불순종으로 성전을 무너지게 했던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성전 재건보다 고향에서 자리잡기 바빴던 자신들의 모습을 회개하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큰 기쁨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대성통곡할 노릇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교회와 캄보디아를 봐도 대성통곡할 일이 많다. 대성통곡은 하나님 앞에 서면 터져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다. 회개의 눈물이든 은혜의 눈물이든. (스3)

나의 눈물이 말랐다면 그만큼 성전이 무너진 것이다. 울지 않는다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듯)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