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약속의 땅에 사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다른 헤어 스타일과 다른 음식을 다른 방법으로 먹는 것으로 구별된다. 예를 들면 사별의 슬픔을 자해하는 것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앞머리를 빡빡 깎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백성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먹어도 되는 짐승과 물고기와 새들과, 먹지 말아야 할 짐승과 물고기와 새들을 구별해 주셨다. 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정한 것,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부정한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는 원리는 분명하지 않다. 마치 애서와 야곱중에서 야곱을 택하신 것과 같다. 중요한 원리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에서 주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해 주셨다는 것이다. 메뉴에 없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집에 가서 피짜를 시킬 수는 없다.
모세는 주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은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정한 먹거리든 부정한 먹거리든, 아니면 정한 먹거리 중에서) 먹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이나 이방인에게 주거나 파는 것은 괜찮다고 덧붙인다. 다시말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정한 것이 객이나 이방인에게도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원래 정하고 부정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정하다고 구별하여 먹어도 되는 염소의 경우도 염소의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 먹지는 말라고 하신다. 먹는 방법도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롬 14:17) 그러니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여 가르치신 사랑의 법으로는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보다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은 개인적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내 육신의 보신을 위해 먹는 것은 세상 나라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성도들과, 교회 밖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먹고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