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9:13-29

‘목이 곧다’는 무슨 뜻일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니 겸손하지 않다는 의미고, 따라서 교만하다는 뜻이다. 주 하나님 앞에서도 머리 숙일줄 모른다. 이런 이스라엘을 주 하나님은 진멸하시고 모세로부터 새로운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급히 백성들에게로 내려왔다.

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급히 두 돌판을 깨뜨렸다. (쉽게 말하면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 전에 계약서를 찢어버린 행동이다.) 그리고 모세는 위약금을 물지 않게 해달라고 주 하나님께 계약 무효를 간청했다. 사십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계약을 철회해 달라고 졸랐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언약을) 어겼으니 죄값을 치러야 했다. 당연히 죄값은, 벌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들어주셨다. 주 하나님은 적어도 아론 한 명에게는 책임을 물으려고 하셨지만 이마저도 모세의 중보로 철회하셨다. (백성들이 계약서 내용도 모르고 모세를 대리자로 세웠기에 봐주셨나) 모세는 불순종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워버렸다. 티끌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도) 불순종은 이어졌다. 이것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항상 주 하나님을 거역해 왔다’고 지적한다. 모세는 가네스 바네아에서의 거역도 거론한다. 물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판결)도 죽음(진멸) 이었으나 모세의 사십주야 식음전폐의 중보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에 신실하신 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상속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 의인 한명이라도 있으면 용서하신다.

신명기 9:1-12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강대한 나라, 즉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높고, 백성 수는 많고, 백성들은 아낙자손처럼 거인인 나라를 쫓아내고 진멸하는 것이다. 이런 강대한 나라들을 주 하나님께서 엎장서서 쓰러뜨리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 하나님을 뒤따라 저들을 쫓아내고 멸하라고 모세는 말한다. (청소는 주 하나님이 하시고 쓰레기 통은 백성들이 비운다)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들을 이렇게 쫓아내고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고 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리가 가나안 일곱 족속보다 공의롭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일곱 족속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밝히 말한다. 주 하나님은 일곱 족속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언약을 이루신다고 모세가 말한다. 이스라엘의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세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기시킨다. 목이 곧은, 고집불통의 역사를 끄집어 낸다. 주 하나님께 거역하고 주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여 진멸당할 뻔 했던 백성임을 기억시킨다. 심지어 주 하나님의 법을 기다리는 동안 주 하나님의 명령을 속히 떠나 우상을 만들었던 백성이었다.

선민. 구별된 백성. 그러나 역사는 선민들의 불순종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이스라엘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버려져도 마땅할 만큼 스스로 부패한 백성이었다.

의인은 없다. 나의 의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은혜만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내가 공의로운게 아니고 내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예수 안에 사는 내가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

그런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뭐 눈에는 뭐가 보인다니 나를 삼가야 한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공의로와서가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너희들도 거역과 주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백성이라고. 스스로는 부패한 백성이라고.

신명기 8:11-20

명령과 규례와법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주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역으로 지키지 않는 것은 주 하나님을 잊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부자가 되면 마음이 교만하여 주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모세는 염려한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낮추신 이유를 복 주려 하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내 능력과 내 손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것이라고 염려한다. 그러니

모세는 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잊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분도 주 하나님이심을 잊지말라고 한다. 언약의 주 하나님을 삼가 잊지 말아야 한다.

주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신(하나님)을 따라 섬긴다는 것이고,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주 하나님의 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다.

복은 먹고 마시는데만 있지 않다. 배부르고 등 따시고, 건강하고 큰 집 사고 재물이 풍부해 지는 것은 세상이 구하는 복이지만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은 의와 희락과 화평이 풍부해지는 복을 구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신명기 8:1-10

모세의 강설은 분명하다. 명령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사는 방법 (생명) 이다. 이것이 번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열쇠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사십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것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생 (낮추시며) 연단 (시험하시며) 자체가 아니라 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절을 인도하신 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명령을 지키면 순행하고 불순종하면  역행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기억해야 한다.

주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고생하게 하시고) 주리게 하신 (만나를 먹이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신) 이유는 삶이 주 하나님의 명령 (말씀)에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서 알도록 하신 것이다. 고생길이었다 하여도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 개고생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차라리 자식을 유격훈련에 보낸 아비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모세는 반복에 반복을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여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나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나 모두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동일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한다.

약속의 땅은 골짜기든 산지든 물이 풍성하고, 소산이 풍성해서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뿐만아니라 철광산과 구리광산도 있다. 배부름으로 광야의 불평과 원망은 사라진다. 약속의 땅은 옥토를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땅이다. 그러나

모세의 반복을 기억해야 한다. 네 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우리는 본성상 약속의 땅의 주인이신 찬송받아야 마땅하신 주 하나님 대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 꿀에 관심이 많다. 더군다나 철과 구리도 풍성하다. 그러나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우리는 관심을 주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

광야에서든 약속의 땅에서든 주님이 선한 목자이시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요 10:4 새번역)

신명기 7:12-26

“당신들이 이 법도를 듣고 잘 지키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세우신 언약을 지키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12)

모세는 말을 이어간다. 주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복과 번성이다. 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자손에게 이르기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실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대적들은 악질에 걸리더라도) 질병도 멀리하실 것이다. 그러니 주 하나님께서 넘겨주신 모든 민족 (일곱족속)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여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 그들이 섬기는 신(우상)과 그 백성들을 동일시 하신다. 축복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이 자연도 주관하시고, 소출도 주관하시고, 다산의 신이시고 질병도 주관하신다는 뜻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가나안에서 섬기는 우상들을 진멸해도 소출이나 다산이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모세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있는 족속이 수도 많고 강대해보여 어떻게 쫓아낼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 (아모리 두 왕을 진멸한 일), 광야에서 본 큰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 즉 주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주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 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주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이심을 알아라. 그 주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신다.)

주 하나님께서 이 민족들을 /조/금/씩/ 쫓아 내실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칠까 하노라. 이구절은 무슨 뜻일까? 음.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경고일까? 아마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어도 한걸음 한걸음 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인도로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들이 그르치는 경우를 보면 일자체가 우상이 되어있는 경우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모세는 또 반복한다.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아라. 그것이 올무가 된다. 주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이다. 그것을 네 집에 들이면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당할 것이다. 너는 그것을 멀리하여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이다.

// 모세는 (주 하나님은) 이방의 신들과 이방 신을 섬기는 민족들을 동일시 한다. 가나안 일곱족속은 진멸될 것이다. 그들이 섬이는 신들과 함께.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당연히 주 하나님과 동일시 된다. 그러니 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