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마지막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실 때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아마도 노래 전체의 결론일 것이다. 주님이 당신의 종들은 불쌍히 여기시고 불순종으로 주님의 백성에서 ‘그들’이 되어 그들의 신을 찾고, 그들의 신을 반석으로 삼는 원수들은 보복하신다. 이렇게 주님나라를 깨끗하게 하신다.
결국 모세의 노래는 ‘broken hallelujah’ 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백성에게 이 노래를 모두 다 들려주였다. 우리 인생은 broken 을 뺀 할렐루야로만 장식되어질 수 없다.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을 할렐루야로 결말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노래를 마친 후 이 노래를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라고 당부한다. 이 율법이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이 율법을 순종해야 할렐루야를 오래오래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땅이 아니라 마음이다. 노래를 가르친 후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라. 그러나 약속의 땅에는 못들어 간다. 눈으로만 바라보기만 해라. 땅에 집착하면 모세는 실패자다. 그러나 모세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주님을 대면하며 살았다. 마음에 할례를 받고 살았다. 약속의 땅을 온전히 맛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broken hallelujah 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그 삶은 성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성공했다. 육적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못들어 가지만 (살아 있는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막 12:26,27)
사족: 요즘 즐겨부르는 Leonard Cohen 이 작사한 hallelujah 가 차디차고 상처뿐인 할렐루야를 노래한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할렐루야가 있을까하여 가사 없이 멜로디만 읍조렸다. 그러다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우리말로 된 시도 읽기 어려운데 영어 가사라 직역도 안되고 행간을 읽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간음과 살인을 한 다윗왕도, 여색에 빠져 머리카락이 잘렸던 삼손도 결국은 할렐루야를 부를 수 밖에 없다고 노래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과거의 아픈 추억이나 잘나가던 순간들, 실연의 아픔 등 이런 모든 상황에서도 할렐루야를 불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저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져도, 신자들 마져도 이웃 사랑보다는 이웃을 정죄하는 것만 배운 것 같아도, 기도조차 할 수 없는 밤이라 해도, 차디 찬 곳에 버려졌어도, 그래서 상처뿐인 삶을 살아도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참 신앙이 아닌가? 난 코헨이 어떤 의미로 시를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온전해서 할렐루야를 부르는 게 아니다. 주님이 온전하셔서 할렐루야를 부르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