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30-32:14

모세는 이 노래의 가사를 (말씀을) 끝까지 읽어서 백성들에게 들려준다. (마치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가 연상될까? 이렇듯 읽는 사람은 끝까지 읽어주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다가 잠이드는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과 땅에, 온 세상은 노래를 들어라.

온 세상에 주님의 교훈이 비처럼 내렸다.

주님의 이름을 전파하고 주님을 경외하라.

주님은 반석이시고 완전하시고 정의롭고 진실하시며 거짓이 없으시며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향하여 악을 행한다.주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삐뚤어지게 행한다.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이 되어 주님께 배은망덕했다. 주 하나님은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창조주다.

옛날을 기억하라. 부모세대에게 물어보아라. 그들은 네게 대답할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이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으셨다.

주님이 남겨 주실 것은 주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이 바로 주님의 백성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황무지에서, 광야에서 만나주셨고 지켜주셨고 보호하셨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같이

주 하나님만이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이 없었다.

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먹여주셨다.

6절 상반절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가 모세가 들려준 노래 첫부분의 핵심이 아닐까? 예수님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자들을 어리석다 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로 하셨다. 듣는 귀만 가졌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말과 혀로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지만 행함과 진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듣기만 하는, 말과 혀로만 노래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은망덕이라고  노래한다.

모세가 읽어주는 노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다.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노래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19)

우리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다. 개인적이지 않고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서로 화답하며 불러내야, 살아내야 할 노래다.

 

 

신명기 31:14-30

주 하나님께서 죽을 기한이 가까운 모세를 불러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를 함께 불러 인수인계를 하게 하신다. 여호수아도 주 하나님 임재 앞에 선다.

주 하나님은 모세는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다른 신을 섬겨 주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하신다.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를 꿈꾸는데, 주님이 앞서가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백성을 떠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 무슨 저주란 말인가?

백성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면 주님은 얼굴을 숨기신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들이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을 차마 보고 계실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이것을 노래하라고 한다. 유행가처럼 누구나 부르는 노래가 되어 약속의 땅에서 다른 신을 섬기고 주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어겨 저주를 받을 때, 노래가 (언약의 말씀이) 저주의 이유, 저주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백성들이 어떻게 할지 미리 아신다. 그래서 삼가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언약궤에 두라고 하신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에도 원망과 불평으로 반역을 꾀한 백성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세는 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부패해져 주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할 것임을. 이것을 노래처럼 암송하고 부르라고 하였건만 백성들은 새(세상) 노래만 찾는다.

감사하게도 새노래에 취해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 30:6)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주시기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간구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신명기 31:1-13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1)

모세는 분주하다. 은퇴?를 앞두고 고별 설교를 한다. 고별 심방을 하는 듯하다. 한집 한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큼 모세의 발걸음은 급하다.

그러나 일백이십세. 신명기 말미에 보면 모세는 죽을 때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는 더 이상 출입하기 힘들다고 한다. 육신의 기력과 다르게 영적으로 지쳤을 수 있다. (반대일까?)

모세는 주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신 것과 주 하나님이 아모리 두왕을 물리치신 것처럼 약속의 땅도 멸하시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주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함께하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주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서 가시고,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시는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도 신실해야 한다.

온 나라에 율법을 낭독하는 소리가 넘치고 온 백성이 율법을 듣는다. 자녀들에게는 율법울 가르친다. 객으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친다. 한마디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다. 주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행하고 가르침으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순환이 지속되는 나라. 주 하나님을 경외함이 삶으로 배워지는 나라. 모세가 상상하는 약속의 땅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 가치를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간다.

씁쓸한 토욜 아침이다.

신명기 30

저주는 영원한 형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기억하고 주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명령에 순종하면, 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청종하면 복으로 회복된다. 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저주로 흩어진 백성을) 하나님나라에 다시 모으신다. 아무리 멀리 흩어진 백성이라도 순종하는 백성을 그곳으로부터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하신다.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 하게 하시며, 주의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사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심지어 다시는 불순종하지 않도록 순종하는 자와 그 자손들 대대로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대신 주님의 백성들의 대적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8)

주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결국 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율법에 기록된 명령과 규례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지킨다는 것이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순종할 때, 자손의 번성과 풍성한 토지소산의 복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기쁨이 된다.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11)

청종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의 별을 따는 것도 아니요) 바다에 있는 것도 (망망대해를 건너가서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있다고 하신다. 암송해서 말할 수 있고 마음에 새겨 언제든지 기억할 수 있다. (육법전서를 억지로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밥 먹듯, 숨 쉬듯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시다.

선택은 백성들의 몫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화냐?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생존하고 번성할 것이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주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불순종하면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사망할 것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한다고 하여도 그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화냐?

주 하나님은 친절하게 답을 가르쳐 주신다. 생명을 택하라. 생명을 택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라. 주 하나님을 의지하라. 주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이시요, 장수이시다. 생명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약속의 땅)에서 사는 길이다.

 

 

신명기 29:14-29

주 하나님의 언약은 모압 땅에서 주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올 세대에도 유효하다. (오늘 우리와 같이 주님 앞에 서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 된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이적과 기사를) 볼뿐 아니라 세상 가치(목석과 은금의 우상)와도 맞닥뜨린다. 세상 가치를 좇아 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저주(독초와 쑥)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믿음의 조상에서 저주의 조상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 (세상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저주의 뿌리가 된다는 말을 듣고도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 나는 괜찮겠지라며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며, 주 하나님의 분노와 질투를 쌓는 것이며, 율법에 기록된 저주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 하나님의 출석부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신다고 하신다. 주 하나님이과 백성사이의 언약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으랴.

주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것은 자자손손 이어져야 하고, 멀리서 오는 객, 여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주받는 것이 어찜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뻔하지 않은가? 주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애굽때 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했기 때문이다. 신명기가 기록된 이유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대로다. 이것이 나타난 일이다.  감추어진 일은 주 하나님께 속했다. 이 감추어진 일에 대해 자신의 소견대로 평안하다를 외치면 저주의 뿌리가 된다. 주 하나님께서 숨기시는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종이다. 이미 주신 (나타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아마도 감추어진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일이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만 남았다.  서로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