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도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오늘 바울은 율법이 신령하다고 선언한다. 신령하다라는 육체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영적이다. 그런데 바울 자신은 육체적인 존재라고 고백한다. 죄에게 종으로 팔렸다고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한다.
(죄의 노예가 되어서) 행하는 것을 바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은 분명히 해야하는 행동이 있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하여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는 것은 율법이 선하다는 (선한 것은 한 분 하나님) 것을 인정하게 한다.
이제는 (아직도 여전히) 율법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내가 (바울 자신이) 아니요 바울 속에 있는 죄라고 말한다. 바울 육체 속에는 선한 것(주님)이 거하지 않는다. 육체 속에 주님이 거하시지 않으니 영이 순종을 원해도 육체는 선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
내가 (내 영이) 원하는 바 선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육체가 원하는) 악을 행한다. 다시한번 바울은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자는 영적인 바울이 아니라 바울 자신 속의 죄라고 선언한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도 함께 있다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다. 속사람,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다른 법, 즉 죄의 법이 바울을 여전히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구나’ 라는 바울의 탄식이 우리의 탄식이다. 죽을 몸에서 (죄의 삯인 사망에서) 누가 우리를 생명으로 옮겨줄 것인가.
바울은 새사람이다. 답을 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 주님과의 연합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우릴 옮긴다. 그래서 곤고한 바울이 감사의 사람이 되었다.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여전히 죄의 법을 섬기지만, 주님과의 온전한 연합은 하나님의 법에 온전히 순종하게 한다. 복음이다. (우리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을 거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