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9-29

복음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복음을 이야기 하는데, 자유의지와 예정론이라는 신학적 문제를 꺼내드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신다면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책망하실 수 없다고 반발한다. 누가 하나님을 뜻을 거역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든다. 바울은 근본적으로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따질 권리조차 없다고 단언한다. 토기장이와 그릇의 비유로 이 문제에 답한다.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따질 수 없다. 그릇을 만드는 전권은 토기장이에게 있다.

22절의 분위기는 묘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시고자 멸하기로 예정하고 만든 (진노의) 그릇에 대해서도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신다. 마찬가지로 영광 받기로 예정하고 만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도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도록 (오래 참음으로 관용) 하신다. 한마디로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어 졌건,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 졌건 피조물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도록 만들어졌다.

바울은 그릇은 우리라고 한다. 우리는 누구를 지칭할까? 사람들일까? 성도들일까?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그릇은 긍휼의 그릇만 지칭할까?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없음을 호세아의 글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사도 요한도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유대인들 중에도 남은 자, 소수만 구원받는다고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아는 믿음에 거하는 것이다. 믿음이 결국 하나님이다. (당신이 믿는 것이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토기장이가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지만 결국 쓰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귀하게 쓸려고 만들었어도 지져분하면 쓸 수 없고, 천하게 쓸려고 만든 그릇도 지져분 하면 쓸 수 없다. 지져분 한 그릇은 결국 귀하든 천하든 진노의 그릇이 되고 깨끗한 그릇은 결국 긍휼의 그릇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는) 하나님의 긍휼로(사랑으로)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나를 깨끗게 씻어 놓으셨다. (그런데도 검뎅이 위에서 오늘도 구른다.) 성령의 도우심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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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가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지만 결국 쓰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귀하게 쓸려고 만들었어도 지져분하면 쓸 수 없고, 천하게 쓸려고 만든 그릇도 지져분 하면 쓸 수 없다. 지져분 한 그릇은 결국 귀하든 천하든 진노의 그릇이 되고 깨끗한 그릇은 결국 긍휼의 그릇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귀하냐 천하냐) 따지는 것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 대신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예수의 피로 깨끗한 그릇 (긍휼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마져 나의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고 복음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