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26-35

슬프도소이다. 예레미야의 한탄에 가까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의 고백과 다름없다. 주님은 창조주요 전지전능 하시다. “못할 일이 없다.”고 선언하시고 답을 하신다. 예루살렘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넘겨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음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혔느니라.”(32)

31-32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이 성은 설 때부터 이 날까지 내 가슴에 불을 질어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는 보기도 싫어, 이 성을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이스라엘 문중과 유다 문중이 그 왕들, 고관들, 사제들, 예언자들을 비롯하여 유다의 온 국민, 예루살렘 시민들까지 온갖 못할 짓을 하여 나의 속을 썩여주었는데 어찌 그대로 두겠느냐?”

주님은 그래도 주님의 백성들을 깨우치고 타일르고 가르치셨는데 주님의 백성들은 교훈을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등을 돌려버렸다. 외면했다. 심지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강조하신다. 나는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 나는 나의 백성들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으신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원리는 간단명료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행한대로 갚으신다. 끊임없이 가르쳐 주시는데 그 교훈을 듣지 않고 받지 않으면, 나아가 악을 행하면 주님이 어찌 우리를 그대로 두실까?

예레미야 32:16-25

슬프도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어도 예레미야가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전능하신 분이 아니신가. 천하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으시고, 천하 모든 사람들을 벌하실 수 있는 크신 능력의 주님이시다.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천하 모든 사람들을 주목하시고,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셔야 하는 나라였다.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표적과 기사로 주님되심을 드러내주셨건만,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셨건만,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건만,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않고 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은 지금 당하는 모든 재앙을 내리셨다.

오호 통재라. 슬프도소이다.주님이 하실 소리다.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심판하시는 주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시며 하실 소리다. 아멘하면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되기를 바랐던 예레미야의 심정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아나돗 밭을 샀지만, 그리고 회복에 대한 말씀도 받았지만 소망은 보지 못할 운명이니 슬프다.

슬프도소이다.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하나님만 가르치고,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주님이 모든 사람들의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치지 않은 오늘날 교회의 처지를 생각하니 슬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순종해야 할 이유다.

예레미야 32:1-15

유다 시드기야 왕 열째 해, 유다 패망의 목전이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에워싸여 있었다. 이때 예레미야는 유다 왕궁 시위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운명과 예레미야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넘겨지고 예레미야는 풀려난다.)

예레미야야 아나돗 밭을 사라. 유다 패망 직전에 땅을 사라는 것은 망할 회사의 주식을 사라는 것이요, 그린벨트로 곧 묶여 칠십년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땅을 사라는 꼴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땅을 은 십칠 세겔에 산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여 보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땅에서 다시 권리를 행사하게 될 날이 돌아 올것이라고 하셨다.

//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에워쌓여 패망직전이다. (아니면 감사하고)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자중지란이다. 꼭 예레미야를 가둔꼴이다. 한국 교회내에도 자정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자정을 하면 교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에, 그래도 교횐데 망하겠어 하면서 치부를 가두기만한다.

// 하나님은 땅을 사라고 하신다. 교회재산을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명동땅이 아니라 강원도 산골 땅을 사라고 하신다. 가난한하고 어려운 형제를 돕기 위해서다. 어쩌면 부자교회가 가난한 교회의 땅을 사주어야 한다. 말이 땅을 사주는 것이지, 가난한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를 돕는 것이다. 꾸어주되 돌려받지 않아야 한다. 교회내에서도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다.

// 아나돗 밭의 크기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은 십칠 세겔에 팔렸다. 껌값아닌가? 요셉이 은 이십세겔에 노예로 팔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천년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안따져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애굽 사백년, 다윗왕조 사백년 플러스) 아나돗 밭의 값은 노예 한명의 값도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땅은 선물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 소망을 가지고 투자가 아니라 돕는다. 아나돗 밭을 사는 행위는 투자가 아니라 숙부의 아들을 돕는 행위다.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도우라고 하신것이다. 그리고 돕자 소망의 소식도 주신다. 우리에게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

예레미야, 31:23-4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포로에서 돌아올 때를 꿈꾸게 하셨다. 그땅은 의롭고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로 함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피곤치 않고 상쾌하며 부족하지 않고 만족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단꿈을 꿨다.

하나님께서는 심기도 뽑으시기도 하신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받는다. 자기의 죄악으로 죽는다.

새언약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 요즘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언약 증서를 찢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언약을 깨어질 돌판에 새기지 않으신다. 우리 마음에 새기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신), 그들은 나의 백성’ 이라고 기록하시고 야훼라고 싸인하신다.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서로 말할 필요가 없다. 언약 안에 있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언약 법을 폐하면 이스라엘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아니 하나님나라에서 끊어진다. 즉 언약 안에 있어야 이스라엘도 하나님 나라가 된다.

세상에(천하에) 창조주 하나님(신)과 같은 분이 또 있다면, 그 신은 이스라엘을 행한대로 심판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나라를) 버리겠지만 야훼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다는 뜻이다)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측량하신다. (심판과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