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로마에 여러번 가고자 했었나보다. 여러번 막혔다고 한다. 로마에 가고자 한 이유는 바울이 있는 지방에 (더이상)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페인으로 갈 때 로마를 들려 로마 형제들과 교제하고 로마 형제들의 파송으로 스페인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편지한다.
그럼에도 우선순위는 일단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연보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이방인 성도가 유대인 성도들을 돕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한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으로 서로 돕는 것이다. (이웃사랑이 준법이다.)
바울은 자신의 땅끝이 스페인이라고 다시 천명한다.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에 가겠다고 한다. 바울이 로마 형제들에게 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란 무엇일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어쩌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서로를 위한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길은 바울이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받아지고 유대인 성도들에게도 받아지는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바울과 로마 형제들의 만남이 곧 바울이 가지고 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아닐까?
바울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로마 성도들을 향해 나가길 원했다. 로마 성도들과 편히 안식의 기간을 보내길 원했다. 그때까지 평강의 하나님께서 로마 성도들과 함게 계시길 기도한다. 아멘
// 이 지방에 이제 일할 곳이 없고. 오늘의 도전 구절이다. 선교사의 사역은 전인격적이고 총체적이다. 그러나 선교사가 만능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을 해도 선교사마다 받은 은사가 다르다. 따라서 한 지역에 여러 선교사가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바울이 혼자 다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들어 하는 많이 생각하는 것중의 하나가 뼈를 묻는 것이다. 나는 뼈를 묻는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거의 없지만 민족과 열방을 향해 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많은 분들이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나간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안주하기도 한다. 돌아갈 곳도 없고 각자의 서바나, 곧 땅끝도 없다. 안주 하시는 분들은 땅끝까지 왔다고 생각하나보다. 난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가고자 하면서 너희와 함께 편히 쉬고 싶다는 기도 제목을 나눈 것이 인상적이다.
이제 일할 곳이 없고. 너희와 함께 편히 쉬고 싶다. 하루종일 생각해야 할 문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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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라는 바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선교는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인 일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을 한다고 하여도 모든 선교사가 만능은 아니다. 선교사마다 받은 은사는 다양하다. 따라서 한 지역에 여러 선교사가 협력하여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바울도 혼자 다니지 않았다.
‘이제는 (주님의 시간과) 이 지방 (주님이 보내신 곳)’에 대한 분별이 필요하다. 바울은 땅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안주하지 않았다. 이방선교에 뼈를 묻었지 어느지역, 어느 민족에 뼈를 묻겠다고 하지 않았다. 바울이 전문성이 부족해서 나그네 전도자로 산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바울이 로마 성도들과 나눈 마지막 기도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너희와 함께 편히 쉬고 싶다. 바울은 땅끝을 지향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하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간구한다. 바울은 얼굴을 맛댄적도 없는 로마 형제들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을 소망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