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시드기야 왕 열째 해, 유다 패망의 목전이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에워싸여 있었다. 이때 예레미야는 유다 왕궁 시위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운명과 예레미야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넘겨지고 예레미야는 풀려난다.)
예레미야야 아나돗 밭을 사라. 유다 패망 직전에 땅을 사라는 것은 망할 회사의 주식을 사라는 것이요, 그린벨트로 곧 묶여 칠십년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땅을 사라는 꼴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땅을 은 십칠 세겔에 산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여 보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땅에서 다시 권리를 행사하게 될 날이 돌아 올것이라고 하셨다.
//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에워쌓여 패망직전이다. (아니면 감사하고)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자중지란이다. 꼭 예레미야를 가둔꼴이다. 한국 교회내에도 자정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자정을 하면 교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에, 그래도 교횐데 망하겠어 하면서 치부를 가두기만한다.
// 하나님은 땅을 사라고 하신다. 교회재산을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명동땅이 아니라 강원도 산골 땅을 사라고 하신다. 가난한하고 어려운 형제를 돕기 위해서다. 어쩌면 부자교회가 가난한 교회의 땅을 사주어야 한다. 말이 땅을 사주는 것이지, 가난한 교회의 구체적인 필요를 돕는 것이다. 꾸어주되 돌려받지 않아야 한다. 교회내에서도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다.
// 아나돗 밭의 크기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은 십칠 세겔에 팔렸다. 껌값아닌가? 요셉이 은 이십세겔에 노예로 팔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천년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안따져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애굽 사백년, 다윗왕조 사백년 플러스) 아나돗 밭의 값은 노예 한명의 값도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땅은 선물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 소망을 가지고 투자가 아니라 돕는다. 아나돗 밭을 사는 행위는 투자가 아니라 숙부의 아들을 돕는 행위다.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도우라고 하신것이다. 그리고 돕자 소망의 소식도 주신다. 우리에게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