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7-22

모압 암몬에 이은 에돔에 대한 주님의 말씀. 주님은 대뜸 지혜가 없느냐고 반문하신다. 에돔에 닥친 재앙을 해결할 묘책이 없느냐고 하신다. 에돔은 그동안 지혜롭다고 자만했나보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잠언 9:10에서는 노래하는데 에돔은 몰랐나보다. 그러니 진정한 지혜자는 아니었다.

이런 에돔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도망하는 것이다. 숨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형제 에서라고 해도 벌을 받을 때가 되었기에 주님이 재앙을 내리신다.

주님의 재앙은 혹독하다. 포도 한송이도 남기지 않을 것이고 도둑이 싹쓸히 해갈 것이라고 하신다. 이처럼 도망가고 깊은 곳에 숨어도 다 들춰내서 진멸하시겠다고 하신다.

다만 고아와 과부만 남겨두시겠다고 하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에돔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 절대로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사람들의 조소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며 영원히 폐허로 남을 것이다.

주님이 열방을 일으켜 에돔을 치신다. 지혜롭다고 하던자가 이제는 열방가운데 가장 하찮은 나라가 되어 멸시를 받게 하실 것이다. 바위 틈이라고 해도 산꼭대기로 피해도 주님은 그들을 교만한 자리에서 끌어 내신다. 에돔은 참혹하게 망할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에돔의 망함을 보고 놀라며 저들의 지혜와 교만이 어디 있냐고 비웃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할 것이다. 사자가 푸른 목장에서 양떼를 공격해도 맞설 목자가 없을 것이다. 양들, 어린 양들까지 사로잡힐 것이다. 온 목장이 황폐해질 것이다. 에돔이 망하는 소리에 천지가 진동할 것이다. 홍해바다까지 출렁거릴 것이다. 에돔 용사들이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두려워 떨리라.

//에돔의 멸망을 구구절절이 노래한다. 비유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빗대어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다. 그중에 고아와 과부만 남기겠다고 하신다. 이 역시 복음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은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살리신다. 일부러라도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가 되어야 하나?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 편에 서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살자.

예레미야 49:1-6

주님은 암몬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암몬이 이스라엘 갓지파의 땅을 차지한 것을 문제 삼으신 듯 하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과 조상이 같다. 그런데도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고 이스라엘 패망을 기회로 갓지파의 땅을 점령하나보다.

그러나 심판의 날이 온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암몬도 전쟁으로 불타버릴 것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빼앗겼던 땅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없으시다.

모압과 마찬가지로 애곡하라고 하신다. 굵은 베옷을 입고 애통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암몬의 운명이다. 암몬이 섬기던 몰렉신도 (아마도 신상도) 전리품으로 끌려가고 몰렉신을 섬기던 제사장들과 고급관리들도 다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암몬의 자랑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신다. 암몬에게 방종하였다고 하신다. 비옥한 땅을 자랑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신다. 재물을 의지하여 아무도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장담해봤자라고 하신다.

주님이 심판자를 보내시면 암몬도 패잔병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도망쳐서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심판이 끝나면 모압의 포로 후손들과 같이 암몬의 포로들도 돌아오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암몬에게도 복음은 유효하다.

// 암몬에게 내린 재앙은 형제의 땅을 빼앗은 것과 몰렉신으로 말미암는다. 암몬은 또 비옥한 땅과 재물을 의지했다. 사랑이 없고, 우상을 섬기고, 물질을 의지하는 자의 몰락. 아니 단순한 몰락이 아닌 심판과 벌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어김없이 주어지는 복음은 죄값을 치른 후다.

예레미야 48:36-47

분위기가 반전된다. 교만한 모압의 패망을 보시고 주님의 마음이 슬퍼졌다고 하신다. 주님만이 아니다. 모압도 머리를 깎고, 수염을 밀고, 손마다 상처를 내고 허리에 굵은 베를 걸친다. (요나서 니느웨성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회개의 모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울며 울며 회개한다. 주님의 마음에 들지않아 깨어진 그릇이 되고서야 운다. 늦었다. 주님의 말씀이다.

모압은 깨진 그릇이 되었다. 망했다. 그러니 울어라. 이웃 나라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그래 울어라. 그렇다고 심판이 중지되는 것은 아니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날아와서 모압을 덮칠 것이다. 모압이 주님 앞에서 교만했기 때문에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패망을 피할 순 없다. 피하려고 해도 함정에 빠질 것이고 함정에서 기어 올라와도 올가미에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모압을 심판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징벌을 내리신다.

설령 도피해서 헤스본까지 피한다 해도 헤스본 성도 시혼의 왕궁도 모압의 피난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은 선언하신다. 모압아 너는 망하였다. (모압아 너는 화를 피할 수 없다는 예언적 표현을 성취된 것으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으시다.) 모압의 신을 따르는 백성은 끝장났다. 너희 자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한번 더 일어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훗날에 나는 사로잡혀 간 모압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없으시다. 패망한 모압에게도 복음이 주어졌다.

// 복음은 주님의 마음이다. 교만한 모압에 대해서는 모압의 멸망을 선언하시지만 훗날 모압의 후손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은 어김없다. 한편으로 주님은 훗날 순종하는 백성들에 대한 회복도 약속하신다. 공의로우신 주님의 자비도 어김없다. 복음이다.

예레미야 48:26-35

모압의 멸망을 술취한 자가 필름이 끊긴 것같이 모압도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을 예언하신다. 아니 교만의 술을 마신 것이 결국은 주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꼴이 되어버린다.

모압은 혈육? 이스라엘을 조롱할 정도로 자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모압을 성에서 쫓아 내신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모압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모암의 교만함을 안다. 허풍뿐인 모압이다. 그의 입에는 거짓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모압의 멸망을 애곡하시겠다면 삐꼰다. 모압은 애도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통곡에 통곡을 더하신다. 기쁨과 흥을 빼앗으신다. 향기나고 깨끗한 술은 빚을 수도 없다. 폐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모압의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을 진멸시키겠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 모압의 교만은 형제 이스라엘을 멸시하는데까지 치달았다. 주님은 이런 모압을 간과하시지 않으신다. 모압의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결국 교만이라는 모압의 정체성을 따르는 자들이다.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주님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예레미야 48:11-25

모압. 외침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본 적 없는 모압을 이 그릇 저 그릇에 옮겨 담지 않아서 밑술이 (술 찌꺼기가) 가라 앉은 채 있고 술은 말갛게 떠 있어 향기가 변하지 않고 맛이 한결같은 술에 비유하신다.

그런데 주님이 술을 옮겨 부울 사람을 보내신다고 하신다. 아니 술독을 비우고 술병을 부수겠다고 하신다. 모압이 의지하는 그모스 신 때문에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의지하다 수치를 당했다.)

스스로 용사들이요 날렵한 군인이라고 뽐내봤자 (주님이 심판자들을 보내시는 날) 모압의 용사들을 살육을 당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세상 모든 나라의 왕이시다.

모압이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패망의 재앙이 닥쳤다고 하신다. 모압과 연합한 나라들, 모압의 술을 나눠마시던 이웃나라들이 모압의 패망에 놀라고 슬퍼할 것이라고 하신다. 모압이 망하였다. 모압이 망하였다.

모압의 고원지대 (평지)와 모압 땅 원근 각지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망하였다. 모압 왕조가 모압의 권세가 망했다. 주님의 말씀이다.

// 평생 말갛게 살아왔어도, 날쌘 용사라고 자부해도, 주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천연요새 고원평지도, 인위적으로 세운 성읍들도 모두 주님의 심판앞에는 무용지물이다. 주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벧엘을 의지하다 망했는데 그모스 신을 의지하는 모압이 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주님없는 평안은 어쩌면 술독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독주가 아니더라도 말갛고 향기로운 술이라도 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방탕한 것이다.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 바로 앞절과 함께 읽으면 술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은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이다. (엡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