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

예레미야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있었다. 39장에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사령과 느부사라단에게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라고 명령했는데, 전화도 카톡도 없는 시대라 명령이 늦게 전달되었으리라.
주님은 예레미야가 풀려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 아무리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라고 해도 여호야김부터 시드기야까지만 따져도 20년이상 반복된 재앙의 예언이 바벨론 정보부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리 없다. (우리 역사에도 서동요 이야기가 있다.)
느부갓네살이 사령관에게 예레미야를 선대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역시 말씀의 성취에 대한 경외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령관이 예레미야에게 한 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를 마음에 담은 유다 백성들은 얼마나 될까?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에서 예레미야는 꼼짝달싹을 못한 것 같다. 자신만 포로에서 풀려나서 일까? 아니면 불타버린 예루살렘에는 어차피 돌아갈 곳이 없어서 일까? 예레미야는 사령관의 제안에 따라 바벨론 왕이 유다성읍들을 다스리도록 한 그다랴가 있는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와 함께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살았다.
남은 백성들은 그다랴를 중심으로 모였다. 바벨론에 패한 유다군의 장교들은 숨어있다가 그다랴에게 나왔다. 그다랴는 장교들에게 바벨론은 섬기라고 권면했다.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잘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모압과 암몬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많은 유다 사람들이 그다랴를 중심으로 모였다. 그해 포도주와 여름 과일 수확은 (주님의 은혜로) 풍성했다.
폭풍전야가 아니라 폭풍후 평안이라고 해야하나. 그러나 어두움은 어디에나 내려진다. 암몬 왕이 그다랴의 목숨을 노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패잔병 장교였던 요하난은 그다랴의 목숨을 노리는 이스마엘을 죽이겠다고 한다. 그다랴가 암살당하면 남은 유다사람들 마져 흩어지고 말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다랴는 그 첩보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 세상도 성경 말씀을 안다. 어쩌면 더 잘 안다. 그러나 주님 재림의 성취까지는 순종하는 자가 적을 것이다. 심지어 가시적 교회내에서도 순종하는 자가 적을 것이다. 주님께서 “그러나 내가 다시 올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냐고 반문하셨던 말씀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적은 무리지만 믿는 자에게 하나님나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