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달이니 예루살렘 함람(네째달 구일)후 석달정도 지났다고 해야하나.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 혈통적으로 뿐만 아니라 척화파에 동조했던 시드기야 왕의 절대적 추종자라고 해야 하나.
이스마엘이 열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와 함께 떡을 먹다가 (주화파인)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다. 암살이 아니라 그다랴와 함게 있던 모든 유다사람과 그다랴을 지켜주던 바벨론 군사까지 죽였다. 미스바학살 수준이었다.
이 학살 소식은 이틀동안 미스바 밖으로 퍼지지 않았다. 미스바에서 학살이 있었던 때에 80명의 사람들이 (행색을 보아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었을 것이다)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를 거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다.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은 자신도 슬픔에 잠긴 순례자인양 위장하고 팔십명의 순례자들을 만나 그다랴에게로 가자고 꾀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 던졌다. 다만 팔십 명 중 열 사람은 가지고 있던 먹을 것을 댓가로 목숨을 구한다. 이스마엘은 이들을 형제처럼 대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살인은 살인을 낳고. 이스마엘은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 (예루살렘 함락시 피난해 왔을까?)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암몬으로 출발했다. 그제서야 미스바 학살사건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다른 패잔군 유다 장교들에게 알려졌다.
요하난은 사람들을 모아 이스마엘과 싸우러 나갔다. 암몬으로 포로로 잡혀가던 사람들은 요하난을 보고 기뻐했다. 포로들이 요하난 편으로 돌아서자 이스마엘은 여덟 명과 (둘은 어딜갔을까? 요하난에게 잡히거나 죽었을까?) 암몬으로 도주했다.
요하난과 다른 장교들은 이스마엘이 미스바에서 암몬으로 끌고가던 포로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요하난의 입장은 난처했다. 바벨론이 세운 그다랴가 살해되었고 미스바 학살로 바벨론 군사까지 죽은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운 그는 무리들과 함께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합에 머물렀다.
// 그다랴는 이스마엘이 자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거짓첩보라고 말했지만, 그래서 이스마엘을 환대했지만 결국 치밀한 이스마엘의 계획에 당하고 말았다. 악은 철두철미하다.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악에게 진 것이다. 주화파 그다랴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살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따랐다. 유다의 남은 자들을 이끌어야 할 그다랴의 천하는 석달만에 끝났다. 첩보에 대하여 안일하게 생각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연속적인 삶이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아직 포로로 잡혀가는 중에 일어난 사건일까? 주님이 허락하신 일도 끊임없는 반대에 부딪힌다.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다. 끊임없이 말씀에 의지해야 하고 끊임없이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삼가 순종해야하는 길이다.
// 그다랴의 죽음을 단순한 부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인지도 모르고) 이스마엘을 환대한 그다랴의 태도를 어쩌면 배워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수까지도 환대하는 것이 (죽더라도) 바른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