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1-14

그다랴는 죽고 요하난이 이끄는 남은 무리는 애굽으로 가려고 (이미) 떠나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합에 머물렀다. 여기서 이들은 예레미야를 만난다. 왜 예레미야가 이곳에 있었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동행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존재감이 없었을 뿐이었나?

하여간 진퇴양난의 상황에서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님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공동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주님께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응답을 숨김없이 대답하겠다고 한다. 무리도 주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응답에 순종하겠다고 (주님을 증인)으로 약속한다.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늘로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만큼 순종은 어려운 것이다. 순종 역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간 무리들은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 (좋든지 좋지 않듣지) 순종하겠다고 약속한다. 순종하면 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했다. (순종이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다.)

십일 후에야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 급해 죽겠는데 열흘이나 걸렸다. 열흘이면 애굽에 도착할 수 있는 기간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애굽 피난 길의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주님의 /기/도/응/답/을 전했다.

주님의 기도응답은 애굽으로 가지 말고 이땅에 눌러 앉아 살라는 것이었다. 주님이 세우시고 헐지 않으시며, 주님이 심으시고 뽑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이 내린 재난을 돌이키셨다고 하신다. 그러니 바벨론 왕을 겁내지 말아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시며, 바벨론 왕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겠다. 바벨론 왕에게도 너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어 너희를 본향에 돌려보내도록 하겠다.

그러나 만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 땅을 떠나 애굽으로 피난 간다면, 애굽 땅으로 가면 전쟁도 없을 것이고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고 양식도 궁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될 것이다.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임마누엘이 구원이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결국 순종이 구원이다. 그러면 구원은 순종이 된다.

// 구원받았습니까? = 순종하십니까?

// 입으로 아무리 ‘미쉼니다’해도 순종이 없으면 구원은 저 멀리 있다. 내 가슴도 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