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반전된다. 교만한 모압의 패망을 보시고 주님의 마음이 슬퍼졌다고 하신다. 주님만이 아니다. 모압도 머리를 깎고, 수염을 밀고, 손마다 상처를 내고 허리에 굵은 베를 걸친다. (요나서 니느웨성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회개의 모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울며 울며 회개한다. 주님의 마음에 들지않아 깨어진 그릇이 되고서야 운다. 늦었다. 주님의 말씀이다.
모압은 깨진 그릇이 되었다. 망했다. 그러니 울어라. 이웃 나라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그래 울어라. 그렇다고 심판이 중지되는 것은 아니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날아와서 모압을 덮칠 것이다. 모압이 주님 앞에서 교만했기 때문에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패망을 피할 순 없다. 피하려고 해도 함정에 빠질 것이고 함정에서 기어 올라와도 올가미에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모압을 심판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징벌을 내리신다.
설령 도피해서 헤스본까지 피한다 해도 헤스본 성도 시혼의 왕궁도 모압의 피난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은 선언하신다. 모압아 너는 망하였다. (모압아 너는 화를 피할 수 없다는 예언적 표현을 성취된 것으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으시다.) 모압의 신을 따르는 백성은 끝장났다. 너희 자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한번 더 일어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훗날에 나는 사로잡혀 간 모압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겠다.” 주님의 말씀은 어김없으시다. 패망한 모압에게도 복음이 주어졌다.
// 복음은 주님의 마음이다. 교만한 모압에 대해서는 모압의 멸망을 선언하시지만 훗날 모압의 후손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은 어김없다. 한편으로 주님은 훗날 순종하는 백성들에 대한 회복도 약속하신다. 공의로우신 주님의 자비도 어김없다.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