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바벨론의 패망은 어김없다고 말씀하시는 가운데 학대 받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을 언급하신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학대가 바벨론의 패망의 이유가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패망한 이유가, 즉 이스라엘과 유다가 행한 불순종의 핵심이 백성가운데 있는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정의와 공의로 돌보지 않음이었다.) 주님은 마찬가지 이유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과 유다를 정의와 공의로 대하지 않고 학대한 바벨론을 벌하신다.
그래서 바벨론의 패망은 이스라엘과 유다에게는 소망이 된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강한 구원자가 되어 주님의 백성에게는 평안을 바벨론 주민에게는 불안을 주신다.
바벨론 패망에 대한 말씀이 이어진다. 정의와 공의 대신 학대를 휘두를 바벨론은 칼로 망한다. 바벨론의 지혜도 주님의 정의와 공의를 배우고 실천하지 못하면 어리석게 된다. 바벨론의 용맹도 주님이 사용하시지 않으시면 망치로 제 손을 치고 만다. 제국을 확장한 군대도 전투력을 상실할 것이고 바벨론의 부도 약탈될 것이다. 풍요롭던 땅도 가뭄에 메마를 것이다. 바벨론이 세운 우상들에 미친듯이 매달려 보겠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것이다. 주님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들 것이다.
바벨론이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어도 정의와 공의와 자비의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면 또 다른 심판자를 일으키신다. 바벨론보다 더 잔인한 심판자라고 하신다. 바벨론은 소문만으로도 마음이 녹을 것이라고 하신다. 새로운 나라로 바벨론을 치는 것은 주님의 계획이시다. 어김이 없다. 바벨론의 패망은 온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 우리 주님은 강한 구원자시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학대가운데 구원하신다. 정의와 공의와 자비의 사랑이 없는 곳에서 구원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정의와 공의와 자비의 사랑이 나눠지는 곳이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부르짖어야 (기도해야) 한다. 강한 구원자가 들으신다. 우리는 기꺼이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