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5-11

감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4,45)]

바울이 노래한 빌립보서 2:5-11은 마가복음 10장 44,45절의 확장판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주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다.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무릎을 성자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신 이유다. 이렇듯 예수님이 으뜸이 되셨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어느정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나, 영이셨던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갇히셨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메시지 번역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낮추는 과정이라고 토를 단다. 감옥에 있는 바울이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바울 자신이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리라.

메시지 번역으로 본문을 읽어본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셨던 방식으로 여러분도 자기 자신을 생각하십시오.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셨으나 스스로를 높이지 않으셨고, 그 지위의 이익을 고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조금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자,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한 특권을 버리고 종의 지위를 취하셔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낮추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분은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심 없이 순종하며 사셨고,사심 없이 순종하며 죽으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높이 들어 올리시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받아 본 적 없는 영광을 그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오래전에 죽어 땅에 묻힌 사람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절하고 경배하게 하시고 그분이 만물의 주 이심을 찬양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눅 2:1-14

성탄 아침이다. 어제 일곱시간 버스를 타고 프놈펜에서 호치민으로 왔다. 작고 좁기는 하지만 예약한 숙소에 자리 잡았다. 성탄 성극 특유의 ‘방이 없어요’는 우리에겐 먼 얘기다.

여관에 방이 없어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뉘였다. 호적하러 모인 사람들이 많아 방이 없었기보다 산통이 급하게 와서 여관방이나 해산할 곳을 미쳐 찾지 못했다고 이해하면 성극이 달라질까? 아기 예수님은 사람들의 준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오셨다.

호치민의 성탄전야도 시끄러웠다. 숙소가 여행자거리 근처라 더 요란했다. 성탄장식보다 오토바이의 불빛이 더 화려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여간 하늘의 찬송이 울려퍼져도 우리들 귀에 들릴 것 같이 않았다. 누가 하늘을 볼까? 성탄절은 예수님을 모실 방이 없는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어버렸다.

구주 예수의 탄생 소식은 시끄럽고 화려한 성읍을 벗어난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주의 사자가 두려워 하는 목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 구세주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기에 바쁜 사람들은 구세주 소식을 기다리지 않았지만 가난한 목자들은 양을 세고 별을 세며 주님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늘 천사 성가대가 찬송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나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사는지… 메리 크리스마스!

마태복음 1:18-25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예수 / 죄에서 구원할 자

성령께서 요셉을 통해 알려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이다. 임마누엘이 예수의 다른 이름이다. 예수가 임마누엘의 증거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성탄이브다.

이사야 9:1-7

성탄절을 앞두고 매일성경은 예수님 탄생 예언이 있는 본문으로 묵상하게 한다.

이사야의 예언부터 성탄까지 약 700년. 예수님이 오실 때 이사야의 예언을 기억하고 있던 백성은 얼마나 되었을까? 과연 기대하고 있었을까?

주님이 승천하신지는 벌써 2000년 가까이 지났다. 과연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는 백성은 얼마나 될까? 과연 ‘마라나타’가 교회의 소망일까?

주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보존된다고 하신다. 주님의 열심이 정의와 공의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준다.

요한일서 5:13-21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21)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상에게 눈길도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사귀면서 우상을 가까이 하는 것은 불륜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영생이다. 생기 없는 유한한 우상과 가까이 하는 것은 반대로 사망이다.

우상의 유혹이 심한 세상이다. 때가 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