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됨이다. 부부관계가 대표적이다.
요한은 자녀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알려준다. 주님이 사귐의 손을 내미신 것이다. 아비들에게는 너희가 창조주를 안다고 확인시켜준다. 사귐의 손을 내미신 주님은 창조주이시다. 청년들에게는 악한 자를 이었다고 손들어 주신다. 요한은 14절에서도 13절을 반복한다. 자녀들(아이들)에게는 죄를 용서 받음이 하늘 아버지로 부터임을 알려준다. 아비들에게는 다시한번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청년들에게는 흉악한 자를 이긴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바로 생명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그들의 강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자녀, 아비, 청년은 각각 다른 연령대의 사람일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라는 성도 한명 한명이기도 하다.
사귐은 결국 주님안에서 우리 신앙의 성장이다. 요한은 이 사귐을 방해하는 것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을 사랑하면 주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은 세상 것과 함께 하실 수 없으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과 사귈 수 없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영생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사귄다.
요한의 경고는 영원하지 않고 지나갈 세상에 대한 경고를 한다. 그들은 주님을 떠났다. 주님의 말씀을 떠났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떠났다.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성령 하나님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대신 세상의 가르침, 거짓 진리를 조심하라고 한다.
거짓진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곧 성부 하나님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으신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거하신다. 임마누엘이며 사귐이 있다.
요한은 복음의 첫 가르침이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반복한다.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라. 삼위 하나님 안에서 삼위 하나님을 알아가며 사귀는 것이 약속하신 복음이요 영생이다.
그런데 미혹하는 자들이 있다. 다른 것을 가르친다. 보혜사 성령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는대로 주님 안에 거하면 되는데 미혹하는 자들이 있어서 경고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고 한다. 미혹을 벗어나거나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주님을 친구 삼아 사귀는 것이다. 주님을 친구 삼아 인생길을 간다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꺼리낌이 없을 것이다.
의로우신 주님과 함께 길을 간다면 당연히 의를 행해야 한다. 의를 행하는 자는 주님과의 사귐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