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7-32

복이 있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역으로 말하면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주님은 복을 주신다.

그러나 주님의 복은,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많이 다르다. 복을 쌓아 둘 창고를 지어놓고 편안히 즐기는 삶이 아니라 나그네 삶이다. 오히려 지켜야 할 계명들을 금을 캐듯 찾아야 하는 삶이다. 심지어 지켜야 할 계명들을 찾아 달려가기에 영혼마져 지치는 경주다.

불순종은 주님의 복을 걷어차는 것이다. 그런 거만한 자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당연히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 이것을 알기에 시인은 불순종의 세상에서도 주님의 교훈을 지킨다. 세상은 주님의 율례를 선포하지 못하게 비방한다. 그러나 시인은 (신음하듯) 주의 율례를 읊조리며 묵상하고 지키기는 것을 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의 증거들이 시인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주의 증거들이 인생의 네비게이션이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삶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즉 주의 복을 캐는 일이 영혼마져 지치게 하지만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곧 생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은 삶으로 기도하고 주님은 그 기도에 (생명으로) 응답하신다. 주의 말씀을 가르치신다. 시인은 주의 길을 깨달을 때까지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서까지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실천에 옮겨본다.

순종은 (주의 말씀을 사모하기에 영혼이 지침같이)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햐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주의 말씀대로 서는 길이다. 순종하는 척하는 것에서 떠나야 한다. 척하는 것은 거짓행위다.  순종에 주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다.

시인은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주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며 산다고 고백한다. 순종의 삶의 증거들을 제시하며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수치중의 수치는 세상의 비난이 아니라 주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시는 판결을 받는 것이다.

시인은 주님의 길로 달려가는 이유도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라고 노래한다.

내 삶에 있는 주의 증거를 세어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