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오늘도 하루종일 주의 법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주야로 묵상한다.
시인에게 임마누엘이란 주의 계명과 함께 하는 것, 즉 주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임마누엘이 원수들보다 시인을 지혜롭게 한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임마누엘의 증거로 주야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리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선생되어 주셔서 시인을 가르친다.
주의 법도에 순종하는 시인에게 주님은 함께 하시고 친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니 노인들보다도 명철하다.
명철중의 명철은 모든 악한 길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철저하게 임마누엘의 주님께 배우고 찰라라도 한눈팔지 않고 주의 규례들을 지킨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이 시인을 명철하게 하니 당연한 고백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명철은 거짓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이 명철하게 된 것은 빛되신 주의 말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등대처럼 갈 방향도 알려 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발밑도 비춰주는 빛이다.
시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되신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따라 가기로 다짐한다.
고난이 매우 심하지만 빛되신 주님을 푯대로, 빛되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면 산다는 소망이 시인에게는 확실하다.
주의 말씀대로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생명의 양식인 주의 공의로운 말씀을 또 배운다.
시인은 생명과 주의 법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노래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주의 말씀이 있고 주의 말씀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산다. 그만큼 세상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악인들은 시인을 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시인은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임마누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비한다.
주의 법도를 지킨 삶이 시인이 받은 복이다. 이 복들을 세어 보는 것이 시인에게는 즐거움이다. 이 복을 늘려가는 것이 시인의 바람이다.
시인은 하늘에 복을 쌓는다.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