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13-128

시인은 두마음을 품지 않는다. 아니 두마음을 품는 자들을 미워한다. 시인은 오로지 주의 법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마음을 풀어준다.
시인은 재물이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주님만 피난처요 방패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끊임없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동일시한다. 주의 말씀을 바라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바라는 것이다.
시인은 행악자들을 떠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주의 말씀이 생명길이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소망임을 알기에 그 길을 완주하도록 기도한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구원의 길을 완주할 수 없기에 주님의 율례들을 주의 도우심으로 (이정표로) 삼는다.
주의 율례를 떠나는 자들로부터 주님께서도 떠나시는 것을 본 시인은 행악자들의 속임수의 결국이 허무함임을 알았다.
주님은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신다. 저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물결같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임마누엘의 증거가 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다.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서 시인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주의 심판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의 증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서 시인의 살 길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을 때 핍박자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한다.
정의와 공의를 행할 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는 오만한 자들의 입을 마물게 해달라고 시인은 주님의 복을 구한다.
시인이 구하는 복은 구원이요 주의 말씀이요 곧 주님이시다. 임마누엘이다. 시인이 학수고대하는 바다. (이 구원을 우리는 보고 누리니 감사하다.)
시인은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안다. 그래서 주의 인자하심을 바란다. 주께서 행할 바를 친히 가르쳐 달라고 구한다.
주인의 뜻을 잘 이해하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구한다.
주의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행악자들이 주의 법을 폐했으니 주님이 다시 주의 법을 세워달라고 시인은 간구한다.
시인은 주님이 시인을 통해서 일하시고 주님의 법을 다시 세우심을 알았다 그래서 시인이 주의 계명을 재물보다 더 사랑하고 지킨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시인은 범사에 모든 주의 법을 폐하지 않고 지키며,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한다.

// 주님은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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