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주의 증거라는 표현을 반복할 정도로 주의 말씀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확실한 증거가 따르기에 시인은 놀랄 수 밖에 없고 시인은 영혼까지 주의 말씀을 지킨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은 빛이다. 말씀의 빛이 비치면 우둔한 자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해할 수록 사모하게 되는 것이 주의 계명이다. 주의 계명에 갈급하게 된다.
말씀의 빛은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비친다. 이 빛의 조명을 받는 것이야 말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은혜받은 자는 주님의 길을 따른다. 주님의 길을 벗어나게 하는 그 어떤 죄악도 시인을 주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만큼 유혹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유혹은 반대로 말하면 박해다. 시인은 이 박해로부터 구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주의 법도를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주님의 빛, 주님의 빛되신 말씀의 조명을 받을 수는 있다. 시인은 주님의 율례를 배우는 것이 곧 주님의 빛에 비췸을 받는 것이요, 그 때 주님이 주님의 얼굴을 자기에게 향하신다고 노래하는 것을 아닐까?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고 가르치셨다.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해 한편으로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나님의 얼굴을 느낀) 시인이 주님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주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다. 행위대로 갚으신다.
주님의 약속은 의롭고 주님은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신다.
그런데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니 어쩌랴. 시인은 몸이 달아 오른다.
주의 말씀은 심히 순수하다. 시인이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다.
불순한 세상은 시인을 미천하게 평가하고 멸시하나 시인은 주의 법을 떠나 살 수 없다. 순수한 주님의 약속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주님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다.
그래서 시인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한다.
주의 약속이 영원히 의롭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