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자신에게 와서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자 속았다고 생각하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죽인다. 자신이 동방박사들을 먼저 속였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동방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를 경배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굽으로 피신한 아기 예수님은 물론 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 것도, 베들레헴의 비극도 다 말씀의 성취라고 한다.
헤롯이 죽은 후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가로 알려준다. 요셉은 마리와 함께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헤롯 가문이 왕위에 있어서 두려워 이스라엘 땅으로 가기를 주저하자, 주의 사자가 한번 더 요셉의 꿈에 나타나 지시하자 갈릴리 나사렛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 역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의 성취라고 한다. (구약에는 나사렛 사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받는 종을 노래했고 예수님 당시 나사렛은 고난 받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말씀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용적으로 적용된다. 앞의 두 성취도 같은 맥락이다.)
정작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아기 예수로) 오셨지만 주의 말씀이 희귀한 때라 주님은 주의 사자의 현몽을 통해 의로운 사람 요셉과 교제하신다. 꿈 꿈 꿈! 의로운 사람 요셉과 마리아 가정은 순종한다.
꿈으로 지시함을 받았다고 순종하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요셉은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았음에도 돌아 가기를 무서워했다. 애굽으로 피신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고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하는 것도 재차 지시를 받아서야 순종할 수 있었다. 그래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는 의로운 부부라, 무엇보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의로운 부부 가운데 거했기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서도 순종할 수 있었다.
세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헤롯과 달리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부부였다. 주님은 이런 의로운 부부와 꿈으로 교제 하셨다. 이들에게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과의 교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주님은 우리와 말씀으로 교제하신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는 하루 하루를 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