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21-32

예수님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해 가시신다.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사랑으로 완성하신다. 살인은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고 하신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도, 형제에게 바보라고 미련하다고 하는 자도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형제에게 화를 냈거나 형제를 바보라고 놀렸거나 어떤 이유로든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가가나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우선하여 형제에게 가서 먼저 화목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잘못해서) 고소를 당했을 때에도 사과하고 화목해야 한다. 사랑없이 법대로 하자고 하면 안된다. 법대로 하면 결국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 미움대신 죄값이상으로 사과하고 화목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 사이의 미움을 살인과 동일시 하셨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육체적 간음뿐만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도 간음한 자라고 가르치신다. 나아가서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눈이 실족하게 하든, 손이 실족하게 하든, 실족하게 하는 신체의 일부분이 있다면 빼어 버리고 찍어 버리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음행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거나,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한 자라고 심판하신다. (간음은 사랑이 아니라 성애, 즉 섹스문제다.)

예수님의 계명에 대한 이해는 문자적이지 않다.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계명을 사랑으로 완성하신다. 그리고 우리도 사랑으로 완성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이란 결국 이웃사랑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루에도 몇번씩 살인하며 지낸다. 특별히 운전하면서 나보다 늦게가면 멍청이라하고, 나보다 빨리가면 미친놈이라고 한다는 얘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로의 운전자는 형제가 아닌가?) 간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대신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많고 손으로 갖고 싶은 것도 없지 않다.

오늘도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예수 안에서 사랑하라고 하신다. 살인하지도 간음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이들에게서 돌이키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피차 용서를 구하는 것이요, 실족하게 하는 것을 예수 안에서 끊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