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1-13

마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 (4:23)”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고 기록한다. 산상수훈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의 구체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은 병고치는 구체적 사역을 처음으로 기록한다. 그 첫 대상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나병환자와 두번째가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이라는 점은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아미 4장에서 천국복음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지방, 즉 유대와 이방의 경계에서 시작되었다고 묵상했었다.)

첫 나병환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였다.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나 사람의 뜻으로는 (사랑없는 문자적 율법의 해석으로는) 유대인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무리를 지나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아니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오도록 무리들이 그냥 두었다는 것 자체가 신비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나음이 전적으로 예수님께 달렸음을 알았다. 자신의 간절함보다 예수님이 원하셔야 자신이 깨끗하게 됨을 알았다. 마태는 확실하게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신 일이라고 언급한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을 나병환자의 병고침을 통하여서도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다시 속할 수 있도록 율법에 따라 행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외도 치유하신 것이다. 천국은 단순히 치유의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 백성 공동체에 들어가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두번째 사건은 큰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큰 믿음은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을 구하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심지어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백부장이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했을리 없다. 그의 큰 믿음은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 자신의 하인을 낫게 하신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방인으로서 유대인 선생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사회적 소외자였던 나병환자가 무리를 뚫고 예수님을 만난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유대인이신 예수님이 이방인인 자신을 만나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백부장이라는 지위로 강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잘 알고 한 행동이었다. 물론 가장 놀라운 것은 병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예수님은 덧붙이신다. 천국 백성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하신다. 천국 백성의 자손들이 오히려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신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가르친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백성이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그러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천국백성의 후손은 될 지 몰라도 천국백성은 아니다. 속인주의가 아니라 속지주의에 가깝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하나님나라에서 살아야) 천국백성이다.

백부장의 믿음에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라고 응답하셨고 그 즉시 백부장의 하인은 나았다. 천국 백성의 믿음은 다른 사람의 병을 낫게 한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한다. 관심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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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무엇인가?
1. 이방인도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께 나아 올 수 있다는 믿음
2.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할 수 있다는 믿음
3. 모든 만물이 (심지어 병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믿음

예수님은 세가지 중 첫번째를 가장 귀히 여기시는 듯하다. 천국,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통치의 놀라움이다. 요한은 이것을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설명한다.

천국은 속인주의가 아니라 속지주의에 가깝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하나님나라에 살아야) 천국백성이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백성이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그러나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천국백성의 후손은 될 지 몰라도 천국백성은 아니다.

마태가 유대인들을 주 독자로 쓴 복음서에서 첫 병고침을 사회적 소외자인 나병환자와 백부장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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