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61-176

세상은 녹록지 않다. 세상 지도자들이 거짓에 설복되었다. 그래도 시인은 주의 말씀만 경외한다고 노래한다.
세상은 많은 물질로 기뻐하지만 시인은 주의 말씀을 보배삼아 즐거워한다.
세상이 거짓을 주장해도 시인은 거짓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한다.
와우. 시인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하루에 일곱번씩 주를 찬양한다고 노래한다. 하루에 일곱번씩이라는 표현은 하루 종일이라는 뜻일게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 임마누엘보다 더 큰 평안이 어디 있으랴. 임마누엘의 삶에 그 어떤 것이 장애물이 되랴?
시인은 임마누엘, 즉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한다.
온 맘과 뜻과 힘을 다해 주의 증거, 주의 약속을 사랑한다.
시인은 행하는 대로 갚으시는 주님 앞에서 살아간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주님이 지켜봐 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깨닫고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한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에게 삶을 지도받는다.
전문가의 지도를 구할 때 전문가이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전문가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받으므로 시인의 입에는 찬양이 넘친다.
주님의 가르치심이야 말로 의로우시며 시인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주의 법도를 택하여도 순종하기 어렵다.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시인의 임마누엘을 사모한다. 주님은 주의 율법을 따르는 자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바란다.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시인의 찬송이다. 주의 규례들이 삶의 이정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잃은 양 같아서 방황한다. 시인은 주님이 잃은 양 같은 자신을 찾아달라고 기도한다. 주의 계명을 따라 길을 가겠으니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바른 길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주의 계명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한다.

결국 주님이 내미시는 손을 잡아야 한다. 시인의 마지막 외침 “주의 종을 찾으소서”가 나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시편 119:145-160

시인이 주의 교훈들을 지키지 위해 주님께 전심으로 부르짖는다. 그만큼 주의 교훈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의 응답, 즉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인은 주께 부르짖은 것에 대한 응답을 구원이라고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심이 구원이다.) 임마누엘이 주의 증거를 지키게 도와준다.
시인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의 말씀을 구하고
주의 말씀을 읊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인이 이렇게 주의 말씀을 구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인자하신 주님께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구원해 달라고, 주님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모르는 사람들은 악을 따르는 자들이고 따라서 주의 법에서 떠난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은 진리인 주의 모든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이미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고 주의 증거가 영원한 약속인 것을 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고난중에도 구원의 삶을 산다.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산다.

시인의 자신의 구원이 주께서 친히 변호해 주시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신 약속에 근거한 고백이다.
반대로 악인들이 구원에서 멀어진 이유는 주께서 하신 약속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의 규례들은 주의 긍휼하심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주의 긍휼하심에 의지한다.
시인은 핍박하는 자들과 대적들 편에 서지 않고 주의 증거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거짓된 자들을 보고 슬퍼한다.
그만큼 시인은 주의 법도를 사랑한다. 완전하게 주의 법을 따를 수 없을지라도 주의 인자하심에 생명을 건다.
주의 말씀이 진리다. 영원한 진리다. 불변의 진리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하나님말씀으로 사귀는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시편 119:129-144

시인이 주의 증거라는 표현을 반복할 정도로 주의 말씀은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확실한 증거가 따르기에 시인은 놀랄 수 밖에 없고 시인은 영혼까지 주의 말씀을 지킨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은 빛이다. 말씀의 빛이 비치면 우둔한 자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해할 수록 사모하게 되는 것이 주의 계명이다. 주의 계명에 갈급하게 된다.
말씀의 빛은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비친다. 이 빛의 조명을 받는 것이야 말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은혜받은 자는 주님의 길을 따른다. 주님의 길을 벗어나게 하는 그 어떤 죄악도 시인을 주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만큼 유혹이 많은 세상이다.
세상유혹은 반대로 말하면 박해다. 시인은 이 박해로부터 구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주의 법도를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주님의 빛, 주님의 빛되신 말씀의 조명을 받을 수는 있다. 시인은 주님의 율례를 배우는 것이 곧 주님의 빛에 비췸을 받는 것이요, 그 때 주님이 주님의 얼굴을 자기에게 향하신다고 노래하는 것을 아닐까?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고 가르치셨다.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해 한편으로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나님의 얼굴을 느낀) 시인이 주님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주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다. 행위대로 갚으신다.
주님의 약속은 의롭고 주님은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신다.
그런데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니 어쩌랴. 시인은 몸이 달아 오른다.
주의 말씀은 심히 순수하다. 시인이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다.
불순한 세상은 시인을 미천하게 평가하고 멸시하나 시인은 주의 법을 떠나 살 수 없다. 순수한 주님의 약속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주님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다.
그래서 시인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한다.
주의 약속이 영원히 의롭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영생이다.

시편 119:113-128

시인은 두마음을 품지 않는다. 아니 두마음을 품는 자들을 미워한다. 시인은 오로지 주의 법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시인의 마음을 풀어준다.
시인은 재물이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주님만 피난처요 방패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끊임없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동일시한다. 주의 말씀을 바라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을 바라는 것이다.
시인은 행악자들을 떠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주의 말씀이 생명길이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소망임을 알기에 그 길을 완주하도록 기도한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구원의 길을 완주할 수 없기에 주님의 율례들을 주의 도우심으로 (이정표로) 삼는다.
주의 율례를 떠나는 자들로부터 주님께서도 떠나시는 것을 본 시인은 행악자들의 속임수의 결국이 허무함임을 알았다.
주님은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신다. 저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물결같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임마누엘의 증거가 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다.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서 시인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주의 심판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의 증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서 시인의 살 길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을 때 핍박자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한다.
정의와 공의를 행할 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는 오만한 자들의 입을 마물게 해달라고 시인은 주님의 복을 구한다.
시인이 구하는 복은 구원이요 주의 말씀이요 곧 주님이시다. 임마누엘이다. 시인이 학수고대하는 바다. (이 구원을 우리는 보고 누리니 감사하다.)
시인은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안다. 그래서 주의 인자하심을 바란다. 주께서 행할 바를 친히 가르쳐 달라고 구한다.
주인의 뜻을 잘 이해하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구한다.
주의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행악자들이 주의 법을 폐했으니 주님이 다시 주의 법을 세워달라고 시인은 간구한다.
시인은 주님이 시인을 통해서 일하시고 주님의 법을 다시 세우심을 알았다 그래서 시인이 주의 계명을 재물보다 더 사랑하고 지킨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시인은 범사에 모든 주의 법을 폐하지 않고 지키며,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한다.

// 주님은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시편 119:97-112

시인은 오늘도 하루종일 주의 법을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주야로 묵상한다.
시인에게 임마누엘이란 주의 계명과 함께 하는 것, 즉 주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임마누엘이 원수들보다 시인을 지혜롭게 한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임마누엘의 증거로 주야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리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선생되어 주셔서 시인을 가르친다.
주의 법도에 순종하는 시인에게 주님은 함께 하시고 친히 행할 길을 가르쳐 주시니 노인들보다도 명철하다.
명철중의 명철은 모든 악한 길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철저하게 임마누엘의 주님께 배우고 찰라라도 한눈팔지 않고 주의 규례들을 지킨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이 시인을 명철하게 하니 당연한 고백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명철은 거짓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이 명철하게 된 것은 빛되신 주의 말씀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은 등대처럼 갈 방향도 알려 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발밑도 비춰주는 빛이다.
시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되신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따라 가기로 다짐한다.
고난이 매우 심하지만 빛되신 주님을 푯대로, 빛되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면 산다는 소망이 시인에게는 확실하다.
주의 말씀대로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생명의 양식인 주의 공의로운 말씀을 또 배운다.
시인은 생명과 주의 법의 동전의 양면이라고 노래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주의 말씀이 있고 주의 말씀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산다. 그만큼 세상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악인들은 시인을 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시인은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임마누엘,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비한다.
주의 법도를 지킨 삶이 시인이 받은 복이다. 이 복들을 세어 보는 것이 시인에게는 즐거움이다. 이 복을 늘려가는 것이 시인의 바람이다.
시인은 하늘에 복을 쌓는다.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