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기도일지를 적었다.

느헤미야가 형제라고 부르는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어보았다. 그들은 유다의 형편을 ‘큰 환난과 능욕을 받는다’로 예루살렘의 상황은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고 말해준다. (포로 1차귀환 이후 성전이 재건된지 또다시 70년 이상이 흘렀다. 그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문을 남겼다.

당연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 (마땅히 경외할 하나님이시다.) 느헤미야는 이 하나님이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임을 알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약속에 미쁘신 분이심을 알고 기도한다. 한편으로는 주님의 긍휼이 아니면 언약을 파기당할 존재임을 알고 기도한다.)

느헤미야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한다.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음을 알았다. 조상들이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한 것, 즉 모세의 율법들을 지키지 않을 것을 시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러나라에 흩어진 것이 하나님의 벌이라는 것을 안다고 기도한다. 한편으로는 주님께 돌아와 주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기도할 자격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으로부터) 구속하신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느헤미야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한다. (아마도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유다를 방문하고 돌아온 하나니와 친구들, 혹은 느헤미야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간구를 한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

출애굽후 가나안 입성까지 광야 40년이 있었고 그후 가나안 정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완전정복?은 없었다.) 바벨론 포로부터 1차귀환까지 약속대로 70년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완전 귀환은 없었다. 느헤미야는 1차귀환이후 78년이 지난 에스라의 2차귀환 후 다시 14년정도 지난 사건이다. 다시말하면 귀환 1세대는 거의 살아남아 있지 않은 때다.

그러니까 첫 20년 성전 재건 기간을 포함하여 근 한 세기 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하나님나라의 재건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성전을 재건하고도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서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에스라가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14년이 지나서야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재건이라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한 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성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현대 사회의 일년은 느헤미야 당시의 백년에 해당할 만큼 빠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간 싸움이다. 성전되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도 말씀을 먹고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리고 삶이 온전히 그리스도로 옷입었음을 드러내는 것은 평생의 일이다.

느헤미야는 기도한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우리도 세상 앞에서 은혜를 입어야 한다. 나는 오늘 누구 앞에서 은혜를 입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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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그에게 남아 있는 유대인의 뿌리는 부림절 축제를 즐기면서 생겼을 것이다. 아마 다니엘과 세친구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심장 수산성에서 자란 그는 분명 종교적으로 소수자였다. 한두세대 앞선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르드개 이야기만 읽어도 분명해 진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제국의 종교가 될 수 없었다. 느헤미야의 부모는 (조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1차귀환 당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것을 포기하고 제국의 수도에 남았다. 느헤미야 역시 십여년전 에스라의 2차 귀환 때 함께 하지 않았다. 포로귀환은 하나님의 말씀에 약속된 사건이었었는데 신실한? 느헤미야가 함께하지 않은 것은 이상할 정도다. 그러니 느헤미야는 성경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지 몰라도 신앙인이라기 보다 철저하게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느헤미야를 바꿔놓은 사람들이 유다를 방문하고 돌아 온 형제 하나니 일행이었다. 1차 귀환후 성전이 20년이나 걸려 재건되었다. 그리고 그 후 58년이 지나서야 ‘말씀 재건’을 위해 에스라가 적은 무리를 이끌고 2차 귀환을 했다. 그리고 14년 정도가 흘렀다. 1차귀환때부터 따지면 근 한세기가 지난 셈이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온 형제 일행은 유다는 여전히 큰 환란과 능욕을 받고 있고 예루살렘 성은 성벽은 무너진 채요 성문도 불탄 채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바뀐게 거의 없었다. 성전이 재건 되었어도 말씀을 가르쳤어도!

느헤미야는 울고 또 울었다. 신앙심에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멸망당한 고국, 모국의 모습에 울고 또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인지상정이 느헤미야를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서게 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한 것도 신앙심에서라고 굳이 볼 필요가 없다. 모르드개가 금식한 것도 굳이 신앙심에서라고 말할 수 없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기도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요나 때 니느웨 사람들 처럼 고대 근동 사람들이 회개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신앙심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한 것이라기 보다 인지상정이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으로 나가게 했다. 느헤미야가 울고 또 울 때 소수 민족의 하나님 야웨가 드디어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를 베푸시는 주님으로 찾아주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들은 성경이야기와 부림절 역사 속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느헤미야를 만나주신 것이다.

느헤미야는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다. 종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1장을 맺는다. 함께 기도한 사람들이 하나니 일행이었는지 가족인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드러나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헌신의 기도다.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다. 대제국의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느헤미야의 기도다. 한없이 높아졌던 느헤미야가 드디어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느헤미야가 주님 앞에 은혜를 입자 사람의 (느헤미야의) 말과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족: 신앙심이 된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지상정이 바른 신앙인의 첫걸음이다. 그래서 요즘 인문학 인문학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제국의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속에서 살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돈과 섹스가 주류인 문화속에서 살면서 한없이 높아지려고만 하면서 느헤미야 같은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국의 수도에 살면서 하가랴는 아들 느헤미야를 신앙으로 잘 키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제국의 치열한 교육제도하에서도 적어도 바른 인지상정을 가르쳤던 것 같다. 사람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 신앙보다 먼저다. 그러면 주님이 꼰대신앙이 되지 않도록 그 마음을 만져주실 것이다. 신앙교육 신앙교육하는데 신앙은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국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눈물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첫장이라 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