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6-19

성벽재건을 관리감독하는 것도 바쁜 마당에 백성들이 대적(외환)이 아닌 불의(내우)로 고통받은 일에 대해 느헤미야는 크게 화가 났으나 깊은 생각 끝에 성벽재건 중이라도 대회를 열어 이문제를 처리한다. 깊은 생각이란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에게 대답하기 위해 잠시 하나님께 묵도했듯이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께 장시간 기도로 씨름했다는 것을 뜻일 것이다.

(기도 끝에)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관리들을 모아놓고 같은 동포끼리 인신매매와 돈놀이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책망했다. 특별히 남의 나라에 팔려갔던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동포들을 팔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고 다구쳤다. 귀족과 관리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느헤미야는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지 않은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고리대금 업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방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살라고 교훈했다.

느헤미야 스스로가, 또 자신의 친족과 관리들도 돈놀이를 해왔지만 모든 변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제국에서 관리들의 이자놀이는 느헤미야도 피할 수 없는 당시 관행이었나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관행이었으니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고 또 잘못했으니 앞으로는 안하겠다고만 말하지 않았고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제국의 관행과 하나님의 율법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깊이 생각했었나보다. 그리고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채권자들에게 채무대신 받은) 밭이나 포도원이나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자로 받은 돈이나 곡식이나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도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느헤미야는 귀족과 관리들이 제사장들 앞에서 서약하게 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보이면서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빈 주머니처럼 털어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아멘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백성은 약속을 지켰다. 많은 경우 내우의 문제는 지도권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느헤미야는 사족을 단다. 자신은 유다총독으로 임명받아서 십이년 동안 총독자리에 있으면서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급여를 받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총독자리에 있으면 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선임 총독들 처럼 무거운 세금도 양식과 술값도 거두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적는다. 선임총독들이 거둔 은 사십 세겔이 어느정도인지 가름하기 어렵지만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이 은 삼십이었으니 (즉 포상금 수준이었으니)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다총독 십이년동안 느헤미야가 올인한 것은 성벽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성벽재건에 걸린 기간이 두달이 채 안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물리적 성벽재건도 성벽재건이지만 유다백성으로서의 정체성 회복도 나름 영적 성벽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밭 한 뙈기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 아래 관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방문객을 제외하고 느헤미야가 먹어야 할 관리들과 사람들이 백오십여명이나 되었는데 그것을 느헤미야가 개인적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함에도 총독으로서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부자였었다.) 총독의 녹이 허덕이는 백성들에게는 큰 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성경앱은 은혜도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알려준다. 다시 적으면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은혜란 주님이 나를 알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 행동이 아니라면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결국 느헤미야의 고백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깊은 생각을 하고 (때론 그자리에서 묵도하고) 일을 처리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 익숙한 그에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