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
(주민등록이 끝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했다. 일곱째 달은 언제지? (성벽재건이 엘룰월에 마쳤는데 그냥 일곱째 달이라고 하면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름하기 어렵다.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하여간 느헤미야의 빨리빨리 밀어붙이기식 일처리를 생각하면 주민등록을 마치자마자 곧바로라고 생각된다.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소집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다시한번 일곱째 달 초하루라고 적는 것으로 보아 날짜가 중요한가 보다.) 에스라는 율법책을 가지고 수문광장에 모인 회중 앞에 서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책을 읽어주었고 회중들은 귀기울여 들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하는 강단 좌우로 맛디댜 스마 아나야 우리야 힐기야 마아세야 (이상 6명이 에스라 오른쪽에) 브다야 미사엘 말기야 하숨 하스밧다나 스가랴 므술람 (이상 7명이 에스라 왼쪽에) 총 열세명이 섰다. ( 아마도 에스라와 번갈아가며 율법책을 봉독했을 것이다.)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주기 위해 책을 폈을 때 모든 백성은 일어났다. 에스라가 먼저 야웨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이 땅에 닿도록 야웨께 경배했다. 또 열세 명의 이름들이 나온다.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서 있는 백성들 사이를 오가며 율법을 설명해 주었다. (보혜사 성령님의 역할이랄까? 귀환자들의 후손이라 히브리어를 잘하지 못해 통역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왜 열둘 열둘이 아니고 열셋 열셋일까?)
백성이 율법을 듣고 깨닫자 울기 시작했다. 말씀을 깨닫고 우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역할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에는 울 수 밖에 없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들 사이를 오가며 말씀을 깨우쳐주던 레위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느헤미야가 어디 갔나 했다. 그도 겸손히 백성들 가운데서 함께 말씀을 들었나 보다.)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이 학사 에스라가 아닌 말씀을 듣고 깨달은 느헤미야에게서 나왔다. ) 느혜미야는 백성들에게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고 말하면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나눠주라고 적용한다.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라고 위로하였다. 백성중을 다니던 레위 사람들도 백성들에게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이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 (다들 근심하지 말라고 말만 할 때 느헤미야가 먹고 마시며 나누며 기뻐하라고 적용했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일까?) 모든 백성이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큰 즐거움의 이유를 느헤미야는 먹고 마시고 배불러서가 아니라 들은 율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것과 마시는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임을 알았을까?)
율법에 대한 깨달음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었는지 (하나님나라를 맛본) 백성들은 그 다음날에도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율법의 말씀을 보았다. 그리고 율법에서 초막절에 관한 명령을 보고 적용하기로 했다. 포로지에서 귀환한 회중이 모두 초막을 짓고 그안에 거했다고 기록한다. 역사적으로 여호수아 때부터 처음있는 대대적인 (규모적으로 가장 컸다는 뜻이 아닐까) 초막절 행사였다고 기록한다. 초막절 일주일 기간 내내 하나님의 율법책은 낭독되었다. (백성들은 율법에 대한 깨달음으로 기뻐하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덟째 날에 규례대로 거룩한 모임을 가졌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는 (성벽재건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적용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물리적 성벽재건으로도 하나될 수 없었던 귀환자들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먹을 것을 나눠 먹으면서 (사회적으로 하나되고), 초막절 절기를 지키면서 (종교적으로도) 하나되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같은 음식을 먹었을 것이며 부자나 가난한 자나 비슷비슷한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들었다. 말씀 앞에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겸손하게 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서는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요즘에는 에스라처럼 성경을 읽어주는 앱도 있고 백성들 사이로 다니며 말씀을 깨닫게 설명해 주는 레위인들 같은 앱도 있지만) 오늘도 살아계서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구하면서 말씀을 읽는다. 그러고 보니 혼자 읽기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읽기다. 적용도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인 깨달음으로 나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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