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했다는 7장 4절에 대한 조치라고 할까?
백성의 두목들이란 말은 아마도 오늘날 지역구의원에 해당하지 않을까? 지역구의원이지만 예루살렘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상징적 성읍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고 했을 것이다. 또 폐허에서 막 성벽이 재건된 도시에 아무도 살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레주에 해당하는 처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 중 십분의 일을 제비뽑아 예루살렘 성에 와서 거하게 하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다. 물론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꼭 전쟁터에 내보내는 분위기다. )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선발권을 드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제비뽑힌 사람들은 재수 없게 예루살렘 거주권을 받거나 전쟁터로 내몰린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은 것이다.
이어져 나오는 명단에보면 유다자손 중 베레스 자손은 모두 468명이니 다 용사였다 라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취약한 방어를 대비할 수 있도록 용사를 뽑아주신 것이다. 예루살렘 이주 계획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시행한 것인지 느헤미야의 계힉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포로후 일곱세대 정도가 흘렀다. 이들에게도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었을까? 18절에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기록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도 거룩한 곳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주변국을 여행하면서 Holy Land 라고 성지순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성지였던 곳 순례라고 하면 모를까?
거룩한 곳, 성지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만나 주시는 바로 그곳이다. 모세에게는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옆이였고 여호수아에게는 여리고성 가까이였다. 물론 이 둘에게는 광야의 여정이, 가나안 정복의 과정이 모두 거룩한 곳이였다. 마찬가지로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현장이 거룩한 성이요 하나님나라다. 성지였던 곳을 가보면 안다. 성지가 아니라 폐허요 성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다툼이 극에 달한 곳이라는 것을. 성지순례를 꿈꿀것이 아니라 인생길을 순례자의 길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뽑아주신 사람들. 용사들뿐만 아니라 제국의 왕의 명령에 따라 노래할 사람들도, 또 제국의 왕의 명령에 다라 행정를 볼 사람도 뽑아주셨다. 거룩한 성에서 성전 일만 하는 사람들을 뽑으신 것이 아니셨다.
거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아침이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