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장은 바뀌었는데 그날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하여간 그날에도 백성들은 모세의 책을 읽었다.
모세의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를 저들이 굶주리고 목마른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모압여인 룻이다. (우리는 여전히 혈통을 따지지만 하나님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굶주리고 목마른 이웃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암몬과 모압사람이라고,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하는 악인이라 말할 수 있겠다. 두렵다.)
그날 모인 백성들은 이 말씀을 혈통적으로 적용한다. 그래서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분리시켰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암몬사람 도비야를 정리하는 기회로 삼은 듯하다. (앞서 암몬사람 도비야가 유다 귀족들과의 정략결혼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았다.) 심지어 도비야의 영향력은 제사장 엘리아십에게도 미쳤었다.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큰 방을 마련해 줄 정도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고 기록한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왕에게 다시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성전뜰에 큰 방을 만들 것을 알았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을 것이고 돌아와서 성전에 있는 도비야의 방을 목도한 것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야 이 악한일을 (소문이 아닌 사실로) 알았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물건을 성전뜰 큰방에서 다 내어 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에 필요한 세간으로 채웠다.
1절 그날이 12장 44절의 그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성벽을 봉헌하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챙긴 그날에도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모세의 책을) 들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10절에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알아보니 레위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을 받지 못해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자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제국으로 복귀한 느헤미야는 자신과 시드기야를 비롯한 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서명하고 백성들이 서약한 것이 (느헤미야 10장)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꾸짖는다.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느헤미야가 제국으로 복귀하자마자 (느헤미야는 굉장히 짧은 기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며칠 후라고 적었다.) 이런 일이 터졌다는 것이 놀랍다. 느헤미야는 레위사람들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 그리고 서명했던 내용이 다시 집행될 수 있도록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하난을 돕는 자로 세웠다. 느헤미야는 이들이 충직한 자여서 분배의 직무를 맡겼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예수님은 선한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한’을 ‘하나님의’ 로 바꿔 읽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자신이 행한 하나님의 (=선한) 일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자신이 행한 일이 하나님의 뜻(말씀)에 대한 적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적용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게 해달라는 억지 적용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뜻을) 온전히 적용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평생 제국의 교육과 제국의 제도에 익숙했던 느헤미야였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우리에게도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매순간 필요하다. 기도해야 할 이유다.
주님, 제가 하는 적용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