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15-31

느헤미야 13장은 10장  서약문의 (통혼/안식일/성전세와 십일조) 역순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내용을 바로 잡는 느헤미야의 기록이다.

오늘은 두번째인 안식일을 범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받은 재앙이 바로 조상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꼬집어 말하고 안식일을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안식일 전날 저녁 해지기 전에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않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한두번 성문이 닫혀 고생한 장사치들은 그후로는 안식일에 다시 오지 않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성문을 지키는 일도 레위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느헤이먀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한 이 적용도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제와 같이 이해한다면 이번 적용도 자의적인 적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선한 일이기를 간구한 것이다.

세번째로 유다 사람의 통혼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았는데 자녀들이 유다방언은 못하고 아스돗 암몬 모압의 방언을 더 잘한다고 책망하고 저주한다. 심지어 그들 중 몇사람을 때리고 머리끄댕이를 잡아채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10장 서약의 첫번째와 같이 통혼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명령했다. 느헤미야는 솔로몬 왕도 통혼으로 범죄하였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지혜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이방여인들이 솔로몬을 범죄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한명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언급하고 느헤미야가 그를 쫓아 내었다고 말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더럽히고 언약을 어긴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한편으로는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사람들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도록 지시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행한 일이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따라 적용한 것이요, 선한 것, 즉 하나님의 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느헤미야도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심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옵소서.

구약은 끊임없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순종을 제사제도 준수로  적용할 수 밖에 없었다. 산제사, 영적인 예배에 대해 몰랐던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아예 성문을 잠그는 것도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을 수 있다.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통혼문제도 솔로몬의 예만 언급했지 라합이나 모압여인 룻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모든 적용은 느헤미야가 처한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의 적용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런 자신의 적용을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께 감히 자신이 행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으리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헤아리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하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적용이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되기를 구해야 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

느헤미야의 적용은 당시에는 최선의 적용이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실패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하지 말았어야 할 적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듣고 순종해야 한다. 오늘 나의 이해와 적용과 순종도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임마누엘을 구하고 또 구하게 된다. 선하신 주님 나를 기억하소서. 느헤미야 서의 에필로그는 주님을 기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