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특유의 ‘그때’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변화산 사건이 있은지 얼마지나지 않아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큰지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답하셨다.
어린아이의 천진무구한 성품을고려하신 것이 아니다. 당시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던 어린 아이들의 처지를 가리키신다. 다시 말해 사회적 권리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자니라’ 라고 하셨다.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겸손해지라는 의미보다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이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낮은 자들만이 낮은 자들의 고충을 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라고 하셨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작은 자들을 영접하러 작은 자가 되어 이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한 명을 실족하게 하는 것보다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차라리 자신이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만큼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것은 범죄다. 그래서 범죄하게 하는 신체부위가 있다면 찍어 내버리라고 하신다. 범죄하게 하는 손 없이 발없이 눈없이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성부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 고 덧붙이신다. ‘그들의 천사’는 무슨 뜻일까? 이미 (이땅에서도) 천국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닐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저들의 삶의 곤고함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곤고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뵐 것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큰 자인가?’ 였는데 예수님은 ‘작은 자’가 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미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다시말해 천국에서는 모두 큰 자다. 더 크고 더 작고는 의미가 없는 곳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