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1-14

성벽재건은 착착 진행되었다. 이제 성문에 문을 다는 일만 남았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바비아 사람 게셈 등등 우리의 원수들이 느헤미야 암살이라는 새로운 음모를 꾸몄다. 저들은 물리적 성벽재건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저들은 느헤미야에게 사신을 보내 회담을 하자며 암살하기 좋은 들판으로 나오라고 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막바지라 바빠서 만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네번이나 반복되었지만 느헤미야는 같은 말로 회담제의를 거절하였다.

산발랏은 다섯번째에는 종편에 전갈를 보냈다. (앞선 네번은 사자들을 보냈었다.) 더군다나 봉하지도 않는 편지를 보냈다. 한마디로 공식적이지도 않고 편지 내용을 공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고 유다의 왕이 된다는 반역에 관한 소문이 이웃나라에도 퍼져있고 구체적인 증인까지 있다. 선지자들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려는 계획도 들린다. 이 일이 제국의 왕의 귀에도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으니 이 일을 잘 마무리 하기 위해 의논하자.>라고 편지에 썼다. 한마디로 모반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왕에게 보고되면 예루살렘은 제국의 왕이 보낸 군대에 의하여 또 다시 폐허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불안한 여론 밀려 회담장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담장에 나가는 대신 느헤미야는 그런 소문은 거짓이다. 이 소문은 산발랏 네가 지어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회신함으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한편으로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에 참여한 우리들이 산발랏의 으름장에 놀라서 공사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힘 주시기를 기도했다.

(느헤미야를 해하려는 산발랏의 음모는 집요했다. )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자 느헤미야가 친히 그를 찾아간다. 스마야가 어떤 인물인지 따로 밝히지 않는다. 스마야는 제사장 중 한 명이었을 것이고 아마 느헤미야를 도와 성벽재건을 하다가 갑자기 공사에 나오지 않자 느헤미야가 공사 책임자로서 문안하기 위해 방문한 것 같다. 느헤미야가 방문하자 스마야는 밤에 자객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러 올 예정이니 함께 성전으로 피해 죽음을 면하자고 조언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인 자신은 도망해서도 안되며 또 자신은 성소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고 대답했다. (백성들 앞에서는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자로서 서는 모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때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한 것을 알아챘다. 대적들이 스마야를 암살 목적으로 포섭한 것 같지는 않다. 느헤미야에게 겁을 주고 성전을 더럽히는 죄를 짓게해서 지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도비야와 산발랏 일당이 한 일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을 해하려고 예언한 여선지 노아댜와 다른 선지자들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스마야처럼 포섭된 선지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

어제 느헤미야는 자신의 행실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늘은  자신을 해하려는 일당이 한 행실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다. 느헤미야는 우리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심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롬 2:6-8).

나는 하나님께 나의 행한 일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만큼 성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을 하는가?

느헤미야 5:6-19

성벽재건을 관리감독하는 것도 바쁜 마당에 백성들이 대적(외환)이 아닌 불의(내우)로 고통받은 일에 대해 느헤미야는 크게 화가 났으나 깊은 생각 끝에 성벽재건 중이라도 대회를 열어 이문제를 처리한다. 깊은 생각이란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에게 대답하기 위해 잠시 하나님께 묵도했듯이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께 장시간 기도로 씨름했다는 것을 뜻일 것이다.

(기도 끝에)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관리들을 모아놓고 같은 동포끼리 인신매매와 돈놀이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책망했다. 특별히 남의 나라에 팔려갔던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동포들을 팔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고 다구쳤다. 귀족과 관리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느헤미야는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지 않은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고리대금 업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방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살라고 교훈했다.

느헤미야 스스로가, 또 자신의 친족과 관리들도 돈놀이를 해왔지만 모든 변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제국에서 관리들의 이자놀이는 느헤미야도 피할 수 없는 당시 관행이었나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관행이었으니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고 또 잘못했으니 앞으로는 안하겠다고만 말하지 않았고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제국의 관행과 하나님의 율법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깊이 생각했었나보다. 그리고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채권자들에게 채무대신 받은) 밭이나 포도원이나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리고 이자로 받은 돈이나 곡식이나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도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제안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느헤미야는 귀족과 관리들이 제사장들 앞에서 서약하게 하였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보이면서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빈 주머니처럼 털어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아멘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백성은 약속을 지켰다. 많은 경우 내우의 문제는 지도권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느헤미야는 사족을 단다. 자신은 유다총독으로 임명받아서 십이년 동안 총독자리에 있으면서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급여를 받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총독자리에 있으면 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선임 총독들 처럼 무거운 세금도 양식과 술값도 거두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적는다. 선임총독들이 거둔 은 사십 세겔이 어느정도인지 가름하기 어렵지만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이 은 삼십이었으니 (즉 포상금 수준이었으니)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다총독 십이년동안 느헤미야가 올인한 것은 성벽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성벽재건에 걸린 기간이 두달이 채 안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물리적 성벽재건도 성벽재건이지만 유다백성으로서의 정체성 회복도 나름 영적 성벽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밭 한 뙈기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 아래 관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방문객을 제외하고 느헤미야가 먹어야 할 관리들과 사람들이 백오십여명이나 되었는데 그것을 느헤미야가 개인적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함에도 총독으로서의 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부자였었다.) 총독의 녹이 허덕이는 백성들에게는 큰 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성경앱은 은혜도 ‘기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알려준다. 다시 적으면 하나님께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은혜란 주님이 나를 알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 행동이 아니라면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결국 느헤미야의 고백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에게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고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깊은 생각을 하고 (때론 그자리에서 묵도하고) 일을 처리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 익숙한 그에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기도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

느헤미야 4:1-5:5

느헤미야 4 혼자읽기

오늘의 주어는 느헤미야가 아니고 우리다. 3장에 나오는 성벽재건에 참여한 모든 자들이 우리다. ‘우리’ 참 아름다운 단어다.

우리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한다는 소식에 산발랏은 매우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아니 비웃었다. 사마리아 군사들을 데리고와 빈정거리며 성벽재건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발했다. 마치 블레셋 군사들을 등지고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도발하던 골리앗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 옆에 있던 도비야도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산발랏을 거들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에게 댓구하는 대신 우리 하나님께 기도했다.느헤미야는 자신의 직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한다. 산발랏의 도발이 단순히 성벽재건을 하는 우리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 도발한다고 고발하는 기도를 하고 우리는 열심히 성벽을 재건했다. 원수 갚는 것은 주께 맡기고 주어지 일에 충실했다. 성벽은 전부 연결되었고 높이가 절반정도 쌓였다.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마음들여 일했다고 느헤미야는 기록한다. 우리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즉 하늘에 마음을 두고 일을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벽이 점점 높아가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사람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여전히 화가 났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기습하여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저들의 기습공격을 열번이나 미리 일러주어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신 것이라고 뒤에 고백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백성중 일부를 칼과 창과 활로 무장 시켜서 보초를 서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 사이를 다니면서 귀족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을 격려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와 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위하여 싸워라”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기습공격 계획을 눈치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성벽재건에 힘썼다. 그러나 언제 또 대적의 도발이 있을지 몰랐다.

그때부터 우리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무장하고 지켰다. 심지어 건축하는 자들도 한손으로 일하며 한손으로는 병기를 놓지 않았다. 일부는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했다. 그리고 나팔부는 자를 세워 언제 어디쪽으로부터 대적의 공격이 있어도 합력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야간공격에 대비하여 밤에는 성안에서 묵으면서 경계를 서고 낮에는 건축을 계속했다. 느헤미야와 우리들은 심지어 옷을 벗고 편히 쉬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물을 길러 갈 때도 무기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한다. 성벽재건 현장에는 전시와 다름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느헤미야 5:1-5

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은 백성들의 삶을 더 힘들게 했다. 산발랏 등 강 서쪽 관리들은 아마도 성벽재건을 방해할 목적으로 유다백성들에게 대한 양식거래를 줄였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흉년이라 곡식구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또 세금징수를 독촉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잡혀야 하는 백성들이 생겼다. 심지어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했다. 백성들 사이에는 왜 성벽재건을 시작해 자신들을 힘들게 하느냐는 동요가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무기력했고 부자들은 오히려 탐욕을 채우는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제국은 (세상은)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일하는 것을 못견뎌 한다. 공동체로 일하는 것를 교묘히 (때론 공개적으로) 방해한다. 개인주의화 시킨다. 경쟁사회로 만들어 간다. 이런 생각이 교회에도 들어와 있다.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을 느헤미야는 우리라고 지칭한다. 성벽재건에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주어가 되는 교회를 꿈꾼다.

 

느헤미야 3

느헤미야 성벽재건은 정말 한국적이다. 빨리빨리다. 적어도 시작은 일사천리였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첫삽을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제사장들과 함께 양문을 건축하고 성벽을 함메아 망대부터 하나넬 망대가지 건축하여 성별하였다>라고 적는다. 그리고 성벽을 둘러가며 건축자들을 적어나간다.

문들과 망대들의 이름을 따라가면 양문 – 함메아 망대 – 하나엘 망대 – 어문 – 옛문 – 화덕망대 – 골짜기문 – 분문 – 샘문 – (수문) – 마문 – 동문 – 힘입갓문 순서다. 차례대로 건축되었다기보다 구역을 정해 동시다발적으로 성벽재건 공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건축한 양문과 성벽은 성별되었다고, 즉 하나님께 봉헌되었다고 특별히 구분해서 적었다. (제사장들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달랐던 모양이다.) 반대로 보면 다른부분들도 성별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느헤미야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을 제사장, 금장색, 상인,  등등 직업이나 지위, 여리고 사람들, 드고아 사람들 등등 지역, 누구 누구의 자손과 같은 가문으로 다양하게 기록한다.

느헤미야는 비고란에 일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특이사항도 기록한다. 예를 들면 드고아 사람들 중에는 귀족의 말을 듣고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귀족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세상질서보다 더 중요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나보다. 예루살렘 반쪽을 책임지고 있던 할로헷의 아들 살룸은 자기 딸들과 함께 공사에 참여했다. 성벽재건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었다는 뜻이리라. 물론 빈부귀천 지위고하의 구분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 앞을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집 옆을 보수 했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 내가 좋아하는 느디님 사람들도 성벽재건에 참여했다. 왜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이 구절을 괄호로 가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성전막일꾼들은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어서 어떤 사본에서는 일부러 누락시킨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느니딤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신약적인 성도들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성전막일꾼이어서 성전 가장 가까이에 산다. 이들은 신약적으로 말한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그래서 포로기간에도 자유자가 되기보다 느디님사람들로 모여 살았다. 그리고 에스라 귀환 때 흔쾌히 성전 막일꾼으로 동참했었다. 이들은 시편 84편 10절 <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서 호의호식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라는 시인의 노래를 허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 2장에서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계획을 말하자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듣고 일어나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자>라고 반응했다고 느헤미야는 기록한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일이다. (오직 한분 하나님만 선하시다.) 성벽재건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 즉 관리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느헤미야는 3장에서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남녀노소 빈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선한 일에 참여했다. 그래서 1절이 귀하다.

“대사재 앨랴삽은 동료 사제들을 거느리고 양 다니는 문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문틀을 짜고 문을 만들어 달았다. 그런 다음 메아 망대까지, 또 하나넬 망대까지 수축하여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1절 공동번역)

성전에서도 힘든 일은 성전막일꾼을 부렸던? 제사장들이 직접 육체노동에 참여했다. 느헤미야는 28절에서 제사장들이 마문 위로부터 자기 집과 마중한 부분을 중수했다고 기록한다. 제사장들은 성벽재건에 중복해서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제사장들뿐 아니라 중복되는 이름이 하나 둘 더 보인다.

주일 새벽이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곳이다.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는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느헤미야 2

정리 1

느헤미야가 유다에서 온 형제 하나니 일행의 소식을 들은지 서너달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빨리 빨리와는 다르다. 물론 고대의 시간개념으로 서너달이면 오늘의 사나흘쯤 될지도 모르겠지만. 서너달 동안 하는 금식기도를 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세수를 한다고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왕 면전에서 일하는 느헤미야는 나름 표정관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왕에게 걸렸다.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깨닫고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묻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다. 왕에게 황송했을 수도 있고 왕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놀랐을 수도 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솔직히 말했다. 예의를 갖춰 임금님 만수무강을 먼저 말한 후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이런 왕이 또 있으랴? 왕은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물었고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신)께 기도하고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유다 땅에 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이 굉장히 사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히기 위해 왕과 왕후가 함께 있었다고 기록한다. 느헤미야는 기한을 정해 왕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왕에게 유다까지 가는 통행증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성벽 공사에 필요한 목재도 사용권도 왕에게 받아냈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셔서 된 것이라고 기록한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느헤미야는 즉시 통행증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강 서쪽에 이르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근심하며 느헤미야 일행을 못마땅하게 주시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마자, 아마도 장거리 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기 전에, 사흘만에 그것도 한 밤에 일어나 측근들과 예루살렘을 돌아보았다. 느헤미야는 이때까지 예루살렘 방문목적을 숨기고 있었다. 하나니의 소식과 같이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타버렸다. 느헤미야가 탄 짐승이 (아마도 나귀나 나귀가 끄는 수레) 다닐 길도 제대로 없었다. 성에 있는 지도자들은 왜 왕의 측근이 예루살렘에 왔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정황을 파악한 후에 성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성벽건축을 제안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국의 왕의 허락을 받은 이야기를 들여주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성벽재건을 위한 공사 준비를 하기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에게도 이 소식이 들어갔다. 이들은 너희가 제국의 왕께 반역을 하려느냐 하고 빈정거렸다. 느헤미야는 드디어 제국의 왕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선언한다. 하늘의 하나님 (신)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드디어 제국의 왕과 하늘의 신, 두 주인을 섬기던 느헤미야는 하늘의 신(하나님)을 제국의 왕 위에 올려놓는다. 제국의 왕의 최 측근의 자리에서 하늘의 신의 종, 즉 작은 자의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대신 예루살렘에는 저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정리 2

느헤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 기도한지 서너달이 지났다. 제국의 왕 측근에서 일하는 느헤미야가 서너달 동안 계속 금식을 해 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나 제국의 교육과 제도에 맞춰져 있던 어쩌면 일중독의 생활 습관은 분명히 바뀌었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금식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느헤미야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리 없겠지만) 금식중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세수하는 등 표정관리를 했어도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제국의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다고 적었다. 왕의 관심에 황송했을 수도 있고 왕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놀랐을 수도 있다. (에스더가 왕에게 나갔을 때 왕이 홀을 내밀고 또 잔치상에서 제국의 절반이라도 줄테니 소원을 말하라는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 아닐까?)
느헤미야는 예를 갖춰 왕의 만수무강을 먼저 말한 후 조국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탄채 있다는 소식에마음이 아프다고 대답했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속마음을 물었고 느헤미야는 하나님 (신)의 뜻을 따라 (기도때 주신 마음에 따라) 조상들이 묻혀 있는 유다 땅에 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이 사건은 매우 사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왕과 왕후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느헤미야는 기한을 정해 왕의 허락을 받았다. 내친김에 유다까지 가는 통행증, 성벽재건에 필요한 목재 사용권도 왕에게 받아냈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셔서 된 것이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신)께 은혜를 입은 자가 제국의 왕에게도은혜를 입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가 된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 앞에서는 높임을 받았다.
제국의 수도 수산성에서 왕과 왕후를 모시면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신)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수산성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막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하나님께 묵도하고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에 두신 일에 순종한다.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에게도 도움을 받게 하셨다.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지 못하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느헤이먀에게 하나님은 아직은 하늘의 신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느헤미야 통행증을 가지고 강 서쪽에 도착했다. 강 서쪽을 담당하고 있던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왕의 측근이 이스라엘 자손을 흥황하게 하려고 왔다는 소식에 근심하며 느헤미야의 일행을 못마땅하게 주시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서둘렀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장거리 여행의 여독이 풀리기 전에, 사흘째 밤에 몰래 일어나 (느헤미야는 성 관리들에게 방문목적을 아직 말하지 않았다.) 일행과 예루살렘을 둘러보았다. 느헤미야가 탔을 나귀 혹은 짐승이 끄는 수레가 다닐만한 길이 없을 정도로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탄채였다. 예루살렘에 대한 파악이 끝난 느헤미야는 성 관리들을 모아놓고 성벽재건을 제안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신)의 도우심과 제국의 왕의 허락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들은 적극적으로 성벽재건을 위한 공사준비에 착수했다. (이스라엘을 흥왕하게 하려고 왔다는 소식은 결국 예루살렘 성벽재건이었다. 강 서쪽 관리들이 자세히 몰랐다는 것은 느헤미야가 제국의 왕에게 받은 친서가 그만큼 사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소식은 호론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에게도 들어갔다. 이들은 너희가 제국의 왕께 반역을 하려고 하느냐면 빈정거렸다. 저들은 반역에 대한 보고를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역으로 몰릴 위험 속에서도 느헤미야는 제국의 왕위에 하나님(신)이 계심을 선언한다. 하늘의 하나님(신)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제국의 왕과 하늘의 신, 즉 두 주인을 섬기는 느헤미야는 하늘의 신(하나님)을 제국의 왕 위에 올려 놓는다. 제국의 왕 최측근의 자리에서 하늘 신의 종의 자리로 내려온다. 더 이상 두 주인사이에서 저울질 하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담대하게 예루살렘에는 저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우리도 제국의 한 복판에서 산다. 제국의 교육과 제도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위에 올려 놓기 얼마나 어려운가? 제국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다. 큰 자로 살기 위해서다. 제국(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큰 자, 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끊임없이 작은 자로 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