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족보 2장을 읽어야 한다. 분량도 어제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첫두절부터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목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정리하면 태어난 순서로는 르우벤이 장자다. 출애굽 후 집안을 일으켜서 왕가를 이룬 것은 유다다. 그렇지만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된 자는 요셉이다.
태생의 순서도 중요하다. 신명기에 보면 사랑하는 자의 아들에게 함부로 장자권을 주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한다. 미움받는 자의 태생적 장자에게 두배로 상속하라고 명하신다.(신21:16,17)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태생의 순서에 따라 장자권이 있다고 하지도 않으신다. 이삭도 형 이스마엘이 있었고 이삭이 태생의 순서에 따라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했지만 막으셨고 요셉도 두 아들을 태생의 순서에 따라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태어난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는 듯 하여도 순서가 다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장자의 명분이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되었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받을 때 요셉은 물론 형제들보다 뛰어났고 주권자였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장자권의 이유는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요셉이 두배로 (두 아들이 열두지파에 포함되는) 상속을 받았다는 것에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대에 가면 결국 유다를 통해 예수님이 오신다. 그러니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
태어난 순서가 아니라면, 세상에서의 뛰어남과 주권자가 아니라면 장자의 명분은 결국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주어진다. 이렇게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신다. 전 인류의 장자의 명분을 예수님이 가지신다.
3절은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라고 시작한다. 태어난 순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5장 마지막은 (18-26절) 단순 족보가 아니라 요단 동편을 차지했던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의 절반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두지파 반이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을 때 승전하고 그 땅을 차지하고 살았지만, 그 땅을 차지한 후에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 땅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의해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가로 쫓겨났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족보에 이런 내력을 기록함으로써 후대에 교훈을 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6장 레위의 족보는 더 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