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2

사관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다윗을 도운 용사들의 이름도 기록한다. 한마디로 역대상의 족보는 단순히 혈통적 족보도, 인구조사도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다윗왕국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나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부다.

다윗이 아직 왕이 되기 전에 왕가인 베냐민 지파 (사관은 사울을 동족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사람들 중에도 다윗을 도운 용사들이 있었다. 이들중에는 삼십명 용사에도 들어가고 삼심명 용사의 대장이 된 자도 (이스마야) 있었다. 단순히 말단 용사로서가 아니라 고위 장교로 다윗을 도왔다.

갓 사람들 중에서도 다윗이 광야생활을 할 때 다윗에게 돌아 온 자가 있었다고 한다. 갓 사람들은 요단 동편에 땅을 얻은 지파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그들도 사울 왕 대신 도망자 다윗 편에 섰다는 것은 다윗의 명망을 알 수 있는 증거다. 가나안 정복에 앞장 섰던 갓 지파 사람들은 다 용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윗군대의 지휘관, 즉 천부장 백부장이 되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요단 동편에서 강을 건너 온 용사들 답게 그들은 강건너 골짜기 사람들을 쳐서 쫓아내고 그 땅을 점령하는 용맹을 보였다.

베냐민과 유다 자손 중에서 요새에 있는 다윗에게 나온 사람들을 맞이하며 다윗은 그들에게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작 다윗과 이들이 하나되게 하신 것은 성령이셨다. 성령이 삼십명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동시켜 다윗과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다윗은 그들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다.

다윗에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므낫세 지파에서도 두어 사람이 왔다. 사관은 일곱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모두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들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와서 다윗을 도왔다. 사관은 다윗에게 모여든 군대를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 라고 토를 단다. 23절 사울의 나라를 다윗의 나라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였듯이 다윗군대 명령체계의 최 윗선이 하나님이셨다는 뜻이리라.

이제 유다, 시므온, 레위,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 잇사갈, 스블론, 납달리, 단, 아셀, 르우벤, 갓 등등 12지파가 모두 다윗의 군대에 편성된다. 특이한 것은 레위지파도 하나님의 군대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위 자손들과 제사장 아론의 집안과 제사장 사독의 집안으로 구분해서 참여한다. 이렇게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한다.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마음을 돌렸다.

사관은 이스라엘 가운데에 기쁨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는 잔치에 기쁨은 당연하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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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은 다윗의 군대를 ‘하나님의 군대’ 와 같았다고 토를 단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군대의 특징은
 
1) 베냐민 사람들처럼 혈통과 가문을 따지지 않는다. 2) 갓 사람들처럼 지리적 원근을 (지역배경을) 따지지 않는다. 3) 무엇보다도 사람의 말이 아닌 성령의 감쌈에 순종한다. 4) 므낫세 지파 두어 사람이 므낫세 지파 천부장 일곱 명의 능력으로 커진다. 5)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 명령체계 최윗선이 하나님이시다. 6) 모두가 참여한다. 레위인도 제사장도. 7) 그리고 기쁨이 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그림자를 오늘 본문에서 본다.
 
대상 12 읽기

역대상 11:20-47

요압의 동생 아비새는 또 다른 세명 중 우두머리라고 한다. 아비새는 두번째 세 명 가운데는 가장 뛰어났지만 첫번째 세 용사들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오는 이름이 (솔로몬 때 군대장관이 된) 시위대장 브나야다. (브나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길게 설명한다. ) 브나야가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두번째 세 용사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명은?

그리고 요압의 아우 아사헬 이름도 보인다. 그러면 11장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세 아들 이름이 모두 나온다. 요압이 다윗왕국을 세우는데 있어서 다윗의 오른팔 역할을 한 것은 지울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관은 여러 지방출신의 용사들을 언급한다. 열두지파에 속하지 않은 이방 혈통을 가진 암몬사람 헷사람 모압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윗의 용사였음을 기록한다.

독불장군은 없다. 끊임없이 다윗의 자리를 노렸을 누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그는 조카지만 막내 외삼촌 다윗과 나이차이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다윗왕국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그래서 사관은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을 언급하기 전에  요압이 군대장관이 된 이유를 미리 기록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심지어 다윗이 간음한 밧세바의 남편 헷사람 (이방인) 우리야도 다윗의 용사 명단에서 빼지 않는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권세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하나님나라 생명책에 올라간 이름들도 이렇듯 다양할 것이다. 내가 혹시라고 생각했던 이름이 없을 수도, 내가 설마라고 생각했던 이름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이름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혹시 혹은 설마일 것이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구체적인 삶을 살게 하소서.

 

역대상 11:1-19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한다. 추대 이유로 가장 먼저 같은 혈족임을 강조한다. 두번째로 다윗이 사울의 군대장관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고 하신 예언의 말씀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알고 있음을 시인한다. (골육도 사울의 군대장관 출신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겠지만 온 이스라엘은 그동안의 불순종을 포장해버리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 되었고 이스라엘 각지파의 대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하신 말씀대로 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온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기로 했다. 예루살렘은 당시 여부스 족속의 땅이 었다. 여부스 원주민은 저항하였으나 다윗은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사람을 군대장관으로 삼겠다고 공약했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을 몰아냈다. 그 공로로 요압이 군대장관이 되었다. 이렇게 다윗은 시온 산 성을 빼앗아 다윗 성으로 삼고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다윗은 시온 산 성을 빼앗은 후 그곳에서 살았고 그곳은 다윗 성이라고 불렸다. 다윗과 요압은 함께 성을 견고히 세워갔다. 사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 라고 기록한다. 임마누엘!

사관은 다윗을 도운 용사들의 이름도 기록한다.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이미 언급됐다. 그리고 세 용사로 삼십명의 우두머리 야소브암, 엘르아살이 언급된다. 이 둘은 삼마와 함께 ‘세 용사’였다. (삼마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데 왜?) 야소브암과 엘르아살의 용맹을 기록한 사관은 세 용사의 전설적인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공수 작전을 언급한다.

다윗이 그토록 갈망하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세 용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길어가지고 왔지만 다윗은 그 물을 마시기를 기뻐하지 않았다. 다윗은 대신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렸다. 다윗은 이 일로 (하나님과) 용사들의 마음을 샀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내가 어찌 감히 이 물을 마실 수 있단 말이냐! 이 사람들의 생명의 피를 내가 어찌 마시겠느냐? 이것은 목숨을 걸고 다녀 온 세 용사의 피다.”

독불장군은 없다. 성도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한다.

역대상 9:35-10:14

사관은 9장 말미의 사울왕의 족보를 언급해 놓고 10장에서 돌연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사울과 세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전사한 사건을 기록한다. 9장 말미의 족보를 보면 사울에게는 아들이 넷이 있었다. 막내?가 ‘에스바알’이다.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받은 이스보셋이다. (사울은 막내?의 이름마져도 ‘바알의 사람’이라고 지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보셋’ 즉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게 살았다는 왕명을 붙인 모양이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이 쏘는 화살을 맞았다. 사울은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에게 죽는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해서 부하에게 자신을 찔러달라고 부탁하나, 부하가 두려워서 사울을 죽여주기를 원하지 않자, 자기 칼을 뽑아 자결했다. (부하도 사울을 따라 자결했다.) 사관은 이 사건을 ‘사울과 그의 세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라고 정리한다.

패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망가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성읍들을 차지했다. 다음날 블레셋 사람들은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취한 후 전령을 블레셋 땅 사방으로 보내 승전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사울의 갑옷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에 그의 머리는 다곤의 신전에 달았다.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들었다. 그들은 블레셋에 용사를 파견하여 사울을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와 장사하고 일주일간 금식했다.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을 애도한 것과 별개로 사관은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기록한다. 사울의 죄목을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 라고 밝힌다.

사관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다고 한다.

// 사울은 적어도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에게는 존중을 받았다. 이것도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님과의 교제하느냐 아니냐로 결정된다. 오늘 말씀으로 적용한다면 영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기도(묻는) 삶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헛된 것을 따르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묻는 삶은 이미 영벌이다.

역대상 9:1-34

사관은 온 이스라엘 족보가 이스라엘의 왕조실록에 (유다왕조 포함) 기록되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유다가 범죄함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언급한다.

다시 돌아온 정착한 사람들을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한다. 다른 번역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일부와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느디님 사람이라고 하는 것으로보아 전부가가 아닌 일부분만 귀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일부는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 자손들이었다. 남 유다왕국에 속한 두 지파와 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브라임과 그 형제 므낫세를 언급함으로써 일부이기는 하지만 귀환자들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일부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하다.

그리고 바로 제자장들 명단이 나온다. 제사장들은 1760명이었다. 제사장들에 이어 레위인들이 나오는데 문지기, 성전 기구와 모든 그릇과 고운가루와 포도주와 기름과 유향과 향품을 맡은자, 향품으로 향기름을 만드는 자, 전병을 굽는 자, 떡을 진설하는 자, 찬송하는 자 등으로 구분되었다.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맡았던 직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관은 이들 212명의 문지기들이 택함을 입었다고 한다. 문지기로 택함을 입었다. 이렇듯 성전 일에는 귀천이 없다. 저들에게는 성전 일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보다 가까이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가? 교회 일에도 귀천을 따지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 아내가 한국으로 … 하람이와 다현이는 여전히 집에 있다.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 다가 오는데… 홈캠으로 아이들이 늦장부리는 것을 본다. 그래도 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