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어제) 거룩한 삶이 (특별히 性的 정결이) 믿음의 역사요, 형제와 이웃(특별히 불신자)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궁핍한 자가 없게 하는 것이 사랑의 수고라고 권면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권면한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 형제들에게 자는 자들에 관한 바른 지식이 있기를 원한다. 소망이 없는 자들은 자는 자들에 대해 슬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 자들이 아닌가?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결국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의 부활은 바울의 개인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이라고 선언하면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자라고 해서 지금 예수 안에서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편지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난 후에 살아 남은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때 온전한 (영원한) 임마누엘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영원한 임마누엘을 소망하며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한다. 소망의 인내다.
5장에 들어서면서 온전하고 영원한 임마누엘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바울도 모른다고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미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 알고 있다고, 즉 바울이 주의 말씀으로 이미 가르친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출산 예정일이 있지만 해산의 고통은 갑자기 오듯이 (진통은 갑자기 시작된다)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면서 깨어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의날이 결코 피하지 못하도록 갑자기 올것이다.
바울은 깨어있는 자들, 빛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어둠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위로한다. 성도들은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다. 성도들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자들처럼 졸거나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권한다. (해산을 위해 출산준비를 하고 스탠바이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자는 자들과 취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낮에 일하지 않고 밤에 자고 밤에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낮에 속한 자들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믿음과 사랑으로 구원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시는 이유는 진노의 심판을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고 예수와 함께 있는 자들은 (성도들은) 깨어 있든지 자든지 예수와 함께 살것이라고 (사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여기서 ‘깨어 있든지 자든지’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든지 아니면 밤에 자거나 취하든지가 아니라 ‘살든지 죽든지’의 의미가 강하다. 즉 살아서 믿는 자든지, 아니면 죽어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든지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금 하는 것 같이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지속하라고 편지한다.
// 피차 권면하다는 말은 서로 격려하라는 의미다. 고난을 함께 견뎌내라는 말이다. 소망을 인내로 이루도록 서로서로 도우라는 의미가 강하다. 다시말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라는 뜻이다. 독불장군은 없다. 내 믿음만 강하다고 나 혼자 소망을 인내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을 받았다. 소망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