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째 해 넷째 달 초 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자신에게 보인 때와 장소를 분명하게 기억한다. 혹시 ‘때’를 잊을까 하여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사로잡힌 지 오년 그달 초닷새라고 환상을 본 ‘때’를 이중적으로 기록한다. 장소도 갈대아 땅, 곧 바벨론의 그발 강가라고 명확히 한다.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제사장이라고 직분을 소개한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고 스스로 주석을 단다. 그리고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한다.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온다 – 노아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인다 –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 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이 떠오른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심판의 때에 자신을 부르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을 바로 보는 것은 아니다. 에스겔이 보는 것은 사람과 비슷한 네생물의 형상이다. 사람과 비슷하나 네 생물은 얼굴이 네개, 날개도 넷씩 있으며 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같이 빛난다. 네개의 날개 밑으로는 사람의 손이 있다. 에스겔은 날개는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날개짓을 하지 않고 네 날게 모두 가는 방향으로 곧게 행한다고 묘사하는데 아마도 날개짓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글라이더 처럼 바람을 타듯이 움직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뒤에 보면 날개짓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네 얼굴은 앞은 사람의 얼굴, 오른쪽은 사자, 왼족은 소, 뒤는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다고 묘사한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두 날개를 펴서 서로 서로 맞잡고 두 날개로는 몸을 가렸다고 묘사한다. 네 생물은 ‘영’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한다고 묘사한다. 에스겔은 네 생물을 (사람의 형상이라고 앞에서 말했는데) 숯불과 횃불 모양 같다고 덧붙인다. 네 생물사이에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모습, 영광의 광채가 충만한 모습을 묘사한다. 번쩍이는 번개로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한다. 네 생물은 영이신 하나님의 움직임에 (뜻에) 따라 번개같이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나이 서른에 제사장직을 맡은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여 주셨다. 태평시절이 아닌 포로시절에, 자기 나라가 아닌 감옥과 같은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셨다. 그러나 얼마나 희미한가?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네 생물(천사?) 가운데 임재하시는 광풍과 번개로 밖에 묘사될 수 없으셨다.
그러나 에스겔 후 이천사백여년 후 주님이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내셨다. 물론 이때도 평안의 때가 아니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다. 지체없이 순종하라고 하신다. 지체없이 순종할 때 주님은 순종하는 자들 가운데 임재하신다. #임마누엘.
세상은 지체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다. 자기 잘났다고 자기 의만 드러내는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가 필요한 때다.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