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에스겔은 듣는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일어나서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성령으로 에스겔과 함께 하사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 곧 패역한 백성, 하나님을 배반한 백성을 향해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범죄한 상태라고 선언하신다. 얼굴이 뻔뻔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백성이요 마음도 굳은 자들이라고 하신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셔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패역한 족속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적어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라고 하신다.
(이렇듯) 선지자의 삶은 쉽지 않다. 가시와 찔레와 함께 하는 삶이요 전갈 가운데 거주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가시와 찔레 전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대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패역한 족속의 말도, 그들의 뻔뻔한 얼굴도 두려워말라고 하신다. 다만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 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손을 에스겔을 향해 펴시고 말씀의 두루마리를 펴보이신다. (패역한 족속을 향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안팍으로 (빼곡하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되었다.
// 패역한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위로와 용서의 말씀이 아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다. 다시말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게 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이 나타낸 그 열성, 그 변호, 그 의분,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 그리워하는 마음, 그 열정, 그 응징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후 7:8-11 새번역)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구원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을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라도 은혜의 말씀인 것이다. 복음인 것이다. 세상복만 떠드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선지자도 선교사도 안팍으로 빼곡히 적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을 복음으로 전해야 한다.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