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13-3:5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라고 부른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항상 감사한다고 편지한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영성과 지성, 즉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던 계획이라고 밝힌다.

바울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복음으로 부르신 이유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도록, 즉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믿음위에) 굳건하게 서서 말로 편지로 가르친 전통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전통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으로 완성된 율법의 전통이지 유대인들의 꼰대 전통이 아니다. 그래서 말로 편지로 가르친, 곧 신약시대의 전통을 지키라고 한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뜻과 (모든 선한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성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고난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부탁을 한다. 자신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의 말씀을 잘 가르쳐,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잘 퍼져나가 영광스럽게 되었듯이 바울 일행이 부당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를 바라는 기도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를 적은 무리라고 하셨다. (눅12:32) 미쁘신 주님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실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적은 무리에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을 통하여 전해 받은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했고 순종하고 순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순종을 주안에서 확신했다. (확신의 근거는 바울의 감사제목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다.) 무엇보다도 순종하시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온전해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온전해야 데살로니가 교회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가야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1-12

형제들아! 감사로 편지를 시작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구하는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형제의 입장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여져 가는 지체의 입장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 때 성도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에 관하여, 곧 주의 날에 대하여 귀가 얇아져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심지어 영으로든 말로든 혹은 바울이 직접 써서 보낸 편지를 통한 가르침에 의해서도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영으로나 말로나 편지로 받은 가르침이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본질이 아닌 때와 시기에 대한 논란을, 주의 날의 징조가 무엇인지에 대해 염려한다.) 공동번역에서는 ‘지성을 잃고 쉽사리 흔들리거나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번역한다. 지성을 잃지 말아라.

그래서 바울은 누가 주의 날이 언제라고 말해도 미혹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배교하는 일이 먼저 있을 것이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먼저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날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멸망의 아들, 곧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을 신들의 신의 자리에 올려 놓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적그리스도는 교회를 대적하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둥지를 틀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을 때에 이미 이것을 가르쳤으니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적그리스도는 지금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벌써 은연중에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악한 자들이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 ‘때’도 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때를 막는 자가 있다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악을 억제하고 계신다. 그러나 때가 되면 불법자/악한자, 곧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완연히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주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만으로도 (입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폐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악한자/불법자의 나타나서 하는 일은 사탄의 일이다. 그들도 능력과 표적을 행하지만 거짓 기적이요 불의요 속임수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멸망하는 자들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한자의 속임수에 빠져 악한자들의 거짓을 믿도록 내버려 주신다. 그들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해서 심판을 자초한다.

// 주의 날에 주님의 입기운으로 악한자/불법자는 사망할 것이다. 주님의 입기운은 ‘말씀과 성령’을 상징한다. 이 땅에서 우리도 말씀과 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악과 불의를 이길 수 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때와 시기, 징조로 흔들리거나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주신 말씀을 따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말씀에 문자적으로 집착하거나 보혜사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감동을 오해하여 말씀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공동번역은 2절에서 ‘지성을 잃고 쉽사리 흔들리거나 당황해서는 안된다’라고 경고한다. 지성과 영성! 진리를 알라고 진리를 사랑하라고 진리를 믿으라고 하신다

데살로니가후서 1 (1-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또다시 편지한다. 첫 편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에 관한 설명은 없고 수신자들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밝힌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자신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와 함께 지어져 가는 지체임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강조한다. (전서와 비교하여 ‘우리’라는 단어가 추가 되었다.) 사도적 권위로 편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지체로 편지하는 것이다. 바울 특유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기를 축원하며 문안한다. (전서와 달리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두번째 편지에서도 먼저, 믿음의 성장과 사랑의 풍성함과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소망의 인내를 경주하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바울이 하나님의 여러교회에서 친히 자랑할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인내와 믿음은 굳건했던 모양이다.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편지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당한 고난은 바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기) 위한 것이라고 편지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을 받지만 환난을 주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환난으로 갚으실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환난을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는 하나님께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안식으로 갚으실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의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미 영벌가운데 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과 함께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결코 주님의 힘과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다.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 대신 영원한 멸망의 형별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주님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경외함을 받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가르침을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었다고 적는다. 바울은 자신이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해 가르쳤기 때문에, 하나님께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교회로 여겨달라고 기도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모든 선을) 기뻐함으로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믿음의 역사를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때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높임을 받는다.

바울이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 친히 자랑할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가운데 성장하는 교회였다.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더욱 더 든든히 세워달라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한다. 믿음의 경주는 아무리 힘들어도 결승점까지 인내로 완주해 내야 한다. ‘지금이 좋사오니,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안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길이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받는 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2-2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서로 격려하며 서로 덕을 세우라고 권면했다. 오늘 이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을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으로 서로 화목하라고 권면한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곧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게으른 자들을 (믿음이 강하다고 착각하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가르치고 마음이 (믿음이) 약한 자들은 격려하고 힘없는 자들을을 붙들어 세워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명령한다. 절대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라고 가르친다. 형제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외인 포함)에게 항상 선을 따라 대하라고 권면한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한다.

항상 선을 따르라.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친다. 임마누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

성령과 예언을 무시하지 (하나님의 말씀을 소멸하지도 멸시하지도) 말라고 가르친다. 범사에 좋은 것을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을, 배우는 것을 #마리아 마르다) 취하라고 가르친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고 버리라고 명한다. 악은 흉내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간구한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영과 혼고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간구한다. 바울은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간구한다. (#다윗의 기도)

그리고 우리를 (바울 일행을) 위해서도 (동일한) 기도를 해 달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요청한다. 그리고 모든 형제에게 다시한번 문안의 인사를 한다. 바울은 주를 힘입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 편지의 내용을 모든 성도들에게 읽어주라고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 형제들아, 모든 형제에게, 모든 형제에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가 되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경주해 나가라고 권면한다. 고난의 때에 각개전투가 아니라 한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명령한다. 임마누엘의 기쁨을 누리고 임마누엘을 위해 기도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편지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이 뜻이라고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3-5:11

바울은 (어제) 거룩한 삶이 (특별히 性的 정결이) 믿음의 역사요, 형제와 이웃(특별히 불신자)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궁핍한 자가 없게 하는 것이 사랑의 수고라고 권면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권면한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 형제들에게 자는 자들에 관한 바른 지식이 있기를 원한다. 소망이 없는 자들은 자는 자들에 대해 슬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 자들이 아닌가?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결국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의 부활은 바울의 개인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이라고 선언하면서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자라고 해서 지금 예수 안에서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편지한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난 후에 살아 남은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때 온전한 (영원한) 임마누엘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영원한 임마누엘을 소망하며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한다. 소망의 인내다.

5장에 들어서면서 온전하고 영원한 임마누엘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바울도 모른다고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미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 알고 있다고, 즉 바울이 주의 말씀으로 이미 가르친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출산 예정일이 있지만 해산의 고통은 갑자기 오듯이 (진통은 갑자기 시작된다)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면서 깨어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의날이 결코 피하지 못하도록 갑자기 올것이다.

바울은 깨어있는 자들, 빛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어둠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위로한다. 성도들은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다. 성도들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자들처럼 졸거나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권한다. (해산을 위해 출산준비를 하고 스탠바이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자는 자들과 취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낮에 일하지 않고 밤에 자고 밤에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낮에 속한 자들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믿음과 사랑으로 구원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시는 이유는 진노의 심판을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고 예수와 함께 있는 자들은 (성도들은) 깨어 있든지 자든지 예수와 함께 살것이라고 (사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여기서 ‘깨어 있든지 자든지’는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든지 아니면 밤에 자거나 취하든지가 아니라 ‘살든지 죽든지’의 의미가 강하다.  즉 살아서 믿는 자든지, 아니면 죽어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든지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금 하는 것 같이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지속하라고 편지한다.

// 피차 권면하다는 말은 서로 격려하라는 의미다. 고난을 함께 견뎌내라는 말이다. 소망을 인내로 이루도록 서로서로 도우라는 의미가 강하다. 다시말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라는 뜻이다. 독불장군은 없다. 내 믿음만 강하다고 나 혼자 소망을 인내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을 받았다. 소망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