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이 길갈에서 실로로 옮겨졌다. 분명 길갈에서 제비뽑아 땅을 분배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4:6) 땅분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가나안 대부분의 땅이 정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일곱지파였다. 열두지파중 르우벤, 갓, 동편 므낫세 반지파, 유다, 에브라임, 서편 므낫세 반지파에게만 땅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졌다.
여호수아는 일곱지파에게 주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언제까지 지체하겠느냐고 책망한다. 그리고 각 지파에 세사람씩 선정해서 가나안 땅을 두루다니며 땅을 그려오라고 명했다. 요단 서편에서 유다와 요셉 자손이 차지한 땅을 제외한 부분을 일곱부분으로 나눠 일곱지파에게 제비뽑아 분배하겠다고 한다. 다시한번 레위지파는 기업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땅이 아니라 제사장 직분이 레위사람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각지파별로 세명씩 요단 서편 땅을 두루다니며 분배받을 땅을 그려, 일곱부분으로 나눈다음 실로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돌아왔다. 여호수아는 실로의 주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 이스라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했다.
// 일곱지파에 대한 땅분배에 대한 서론이다.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이 길갈에서 실로로 옮겼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자신이 속한 에브라임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중앙인 실로로 회막을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절반이 넘는 일곱지파가 땅을 분배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말이 분배지 가나안 땅은 (약속에 따라) 점령해야 할 땅이었고 일곱지파에게는 변방지역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또 지파들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었기 때문에 아마도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저들에게는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에서 벌인 무수한 승전의 경험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은 과거의 경험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가나안 정탐때는 각 지파별로 한명씩 열두명이 나갔다. (보통 2인 1조가 아닌가?) 이번에는 각 지파별로 세명씩 내보낸다. 그만큼 가나안 점령에 대한 강한 의지와 긴박성이 엿보인다. 사실 가나안 점령은 주하나님을 따라가는 전쟁이었다. 주님이 앞서 가셔서 가난안 족속을 쫓아내시면 (물론 이스라엘의 심판의 칼로 사용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따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앞서가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직 점령하지 못한 땅을 차지하라고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주하나님께서 저들을 쫓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오늘도 앞장서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살라고 하신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잡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하다. 예수님을 푯대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면 푯대를 놓치게 된다. 신앙의 미아가 된다.
레위지파에게는 다시한번 땅이 아니라, 이번에는 제사장 직분이 기업이라고 하신다. 땅이 아니라 제사장 직분이 기업이다. 직분이 기업이라는 것은 직분을 살아내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