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주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돕던 눈의 아들 여호수에게 모세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신다. 주하나님은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에게 약속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그 땅, 곧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친히 명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밟는 모든 곳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주셨다고 하신다. 그 지경이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주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있을 때 모세를 대적할 자가 없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있으시겠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떠나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이 깨지는 경우는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거나 버리는 경우다.)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개인적인 비젼을 성취하도록 격려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라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개인적 격려가 아니라 한 민족의 지도자에게 주시는 격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에게 개인적으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하신다. 다시한번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이유를 개인적인 비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켜행하고 좌우로 치우지지 않기 위해서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율법에 대한 순종이 형통으로 이끈다고 약속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그냥 강해야지 담대해야지 하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곧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순종이 문자적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자적 법을 지키는 것이라면 한번 암기하면 끝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읽고 묵상해야 한다. 어제의 (죽은) 말씀이 아니라 오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읽고 묵상해야 주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고, 주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온전히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그날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니 당연히 형통이다.
주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명하신다. 다시한번 임마누엘을 약속하신다. 주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라고 약속하신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아무데나 가든지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도 함께 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직 주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뜻한다. 이런 자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시편 1편의 시인은 노래한다.
#임마누엘. 시편 1편의 복이 있는 사람이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다. 주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복이 있는 사람의 형통으로 격려하신다.
// 9월은 여호수아로 시작한다. 구원의 약속은 율법책을 읽고 묵상하고 그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강하고 담대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기 위해서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라고 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