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는 주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증거(언약)궤를 메고 요단 가운데 서있는 제사장들에게 요단에서 올라오도록 명령하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는 순종하며 명령했고 제사장들도 순종하여 요단에서 올라왔다. 제사장들이 요단에서 나오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곳으로 도로 흘러 범람했다고 한다. 요단 물벽이 생긴곳은 아담성읍 변두리 지역이라고 했다. (30킬로미터는 되는 거리라고 한다.) 당연히 물벽이 무너지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후 요단 강이 다시 범람하면서 도도히 흐르는 소리는 생생하게 들렸을 것이다.
첫째달 십일. 여호수아에 처음나오는 달력이라 요단도하를 준비한지 얼마만에 요단을 건넜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요단을 건넌 날이다. 여호수아는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다. (지파별이 확실히 아니구나. 쩝.) 요단과 여리고 동쪽 경계에 세웠다. 사관은 다시한번 열두돌의 의미를 설명한다. 후손들에게 주하나님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조상 앞에서 마르게 하사 그들을 건너게 하신 것이 주하나님께서 홍해를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심과 같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하신다.
열두 돌은 이스라엘 백성과 후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백성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하나님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주하나님을 알고 주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도록 열두 돌을 세운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하신다.)
// 시온의 대로는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다. 요단도하 때 언약궤을 중심으로 넓고 넓은 마른 땅이 대로로 드러났었다. 그러나 칼로 물베기처럼 흔적조차 없어졌다. 인생의 시온의 대로도 마찬가지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시온의 대로를 걷는 것이지만, 우리들 눈에 대로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좁고 협착한 길이다. 어제 마른 땅을 건넜다고 오늘도 마른 땅을 건너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만 가능하다. 마른 땅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요단은 다시 범람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범람하는 요단에 발을 딛어야 했고, 언제 다시 범람할 지 모르는 요단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시온의 대로를 평탄케 하는 역할을 다하기까지 순종했고 마지막까지 마른 땅을 경험했다. 나에게도 지속적으로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라고 하신다. 시온의 대로는 주하나님의 강한 손을 의지하는 자의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