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사관은 아모리 다섯 왕과의 전투의 후기를 첨부한다.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여호수아에게 보고했다. 여호수아는 막게다의 굴을 막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그리고 왕을 잃은 아모리 다섯 왕의 연합군의 후군을 따라가서 저들이 자기 성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진멸하도록 했다. 도망쳐 자기 성으로 들어간 자들은 몇명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막게다에 머무는 여호수아에게 평안히 돌아왔다. 승전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것이다. 감히 이스라엘에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여호수아는 막게다의 굴 어귀를 열어 다섯 왕을 끌어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지휘관들에게 다섯 왕의 목을 짓밟게 했다.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전투력을 각성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굳이 이랬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주하나님 처럼) 말했다. 과연 백성들의 귀에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주하나님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라는 소리가 들렸을까? 여호수아는 다섯 왕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아 하루종일 두었다. 해질 때 다섯 왕의 시체를 막게다의 굴에 다시 던져 넣고 큰 돌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막게다의 성과 왕도 다 진멸했다. 사관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다고 적는다.
// 하나님의 심판에는 중립이 없다. 막게다 왕은 아모리 다섯 왕과 동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브온 처럼 이스라엘에 굴복하여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중립을 지켰을지 모르지만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아모리 다섯 왕이 막게다의 굴에 있다는 첩보를 준 어떤 사람도 막게다 주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보를 주었다고 진멸을 면할 수 없었다. 진멸을 면하기 위해서는 라합과 기브온 처럼 주하나님을 알고 그 권세에 완전히 굴복해야 한다. 알곡과 쭉쟁이는 구분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자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로 구분된다. 중간은 없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는 주께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