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 (1-17)

하늘 예배는 천상과 땅위, 땅아래, 바다위와 바다 가운데 모든 피조물의 찬양으로 확장된다. 단순히 천상의 예배가 아니라 우주적인 예배다. 드디어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어린양의 형상으로 말씀 두루마리 일곱 인 중 하나를 떼신다. 그때 네 생물중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요한을 말씀잔치에 초대한다. // 천상의 예배, 아니 우주적인 예배도 경배와 말씀이 핵심이다.

2 요한은 말씀 두루마리에서 흰말과 흰말을 탄자를 본다. 그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아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다. // 이제부터 상징에 상징이 이어지나보다. 흰말과 흰말을 탄자. 활과 면류관. 미래에 있을 일이지만 현재를 돌아본다면 흰 말을 탄자는 흰 옷을 입은 천상의 장로들 처럼, 혹은 사데교회의 남은 자 처럼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주님과 동행한 믿음에 합당한 자들이요, 활과 면류관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 (칼 대신 활로)을 굳게 잡아 이기는 자에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곧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싸우는 믿음에 합당한 성도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이해된다.

3,4 둘째 인을 뗀다. 이번에는 둘째 생물이 오라고 한다. (‘오라’는 명령은 일종의 화면전환 효과같은 명령어가 아닐까? 곧 ‘보라’, ‘액션/큐’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된다.) 이번에는 붉은 말과 붉은 말을 탄자가 등장한다. 붉은 말을 탄자가 허락을 받아 (누구의)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는 큰 칼을 받았다. // 전도와 선교는 어디가고 오히려 사탄의 꾐에 빠진 두아디라 교회가 연상된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자들은 주님과 함께 심판자가 되어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것이다.

5,6 세번째 인을 뗀다. 셋째 생물이 오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검은 말과 검은 말을 탄자가 나온다. 검은 말을 탄자는 손에 저울을 가졌다. 네 생물 사이에서 밀 한되에 한데나리온, 보리 석되에 한 데나리온이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다. // 음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교회가 미래에도 있음을 말씀하신다. 저울을 우리의 믿음을 재면 과연 육적으로는 궁핍해도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물가가 폭등하여 육적으로는 빈공에 처하겠지만  영적으로는 부족함을 보이지 말라는 뜻이라고 개인적으로이해한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7,8 넷째 인을 떼신다. 넷째 생물이 ‘오라’라 명한다. 이번에는 청황색 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청황색 말을 탄 자의 이름을 사망이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음 그럼 첫번째 흰말을 탄 자는 ‘전도/선교’ -둘째 붉은 말을 탄 자는 ‘시험/환난’ – 세째 검은 말을 탄 자는 ‘가난’ 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청황색 말을 탄 ‘사망’에 의해 땅 사분의 일이 검(전쟁)과 흉년(자연재해)과 사망(질병)과 땅의 짐승들(조류바이러스?)로 죽게된다고 하신다. // 사망이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이는 권세를 누구에 얻었을까? 당연히 하늘 보좌의 하나님이시다. 욥을 괴롭힌 사탄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리라. 주님은 성도의 생명까지도 (물론 1/4이지만) 빼앗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며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하신다.

9-11 다섯째 인을 떼신다. 이제는 ‘오라’는 명령어가 필요없는 모양이다. 요한은 순교자들의 영혼을 본다. 요한은 순교자를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자라고 정의 한다. 이들의 영혼이 하늘성전 제단아래 있다고 한다. 순교자들이 희생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몸은 순교했으나 순교자들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한다. 순교자들의 영이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주재 하나님께 탄원한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니까?”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두루마기를 주시며 좀더 기다리라고 하신다. 믿음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순교의 피를 흘릴 자가 채워질 때까지 잠시 쉬라고 하신다.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의 삶이 곧 우리의 소망이다.

12 여섯째 인을 떼신다. 더 이상 ‘오라’라는 명령어가 없다.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진다. (단순히 지상에서만이 아니라 전우주적 재앙이 닥친다.) 14절은 하늘과 땅이 (산과 섬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늘과 (참 하나님과) 산과 섬이 (세상 신들) 확연히 구분된다.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는다. 굴과 산들의 바위 틈은 우상이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피난처를 뜻할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에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우상들에게 빌어보았자 호흡없는 우상들이 뭘 어쩔꼬. 주님의 날, 진노날에는 이와같이 주님 앞에 능히 설자가 없다고 하신다.

// 길다. 토욜 아침이라 그래도 여유가 있다. 확실히 상징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일곱교회에 하신 말씀이 연상되어 거기에 맞춰 이해하려고 했다. 인을 뗄 때마다 성도들의 상황은 악화된다. 믿음을 보기 힘들다.  결국은 심판을 향해 치닫는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순교자들 처럼 천상의 제단에 드려지는 존재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는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로 사는 것보다 훨 낫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기다린다. 의인의 회중에 들어간다. 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종이든 자유자든 진노의 날에 호흡이 없는 우상에게 피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확실히 상징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길 간구한다. 이해한 것만이라도 순종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도록 하소서. 아멘

요한계시록 5 (1-14)

1 요한은 하늘 보좌를 앉으신 이를 본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이실 것이나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영광으로 보여질 것이지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시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는데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해져 있었다는 표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다 지금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말씀으로 성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으로 상상해 본다.

2-4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누가 그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고 그 말씀을 펴기에 합당하냐고 묻지만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거나 할 자가 없다고 한다. 요한은 두루마리의 말씀을 펴서 보고 자신에게 읽어 줄 사람이 없음에 슬퍼 울었다.

5 그런데 장로중의 한 사람이 요한을 울지 말라고 위로한다.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사탄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인을 떼실 것이라고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하나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친히 펴서 일곱 인을 떼실 것이다.

6 요한이 본 환상은 뮤지컬 무대처럼 돌아간다. 이번에는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어린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아 보였다. 이 어린 앙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는데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성자 예수님도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어린양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실 때도 임금으로 오시지 않으셨는데, 천상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면서도 낮고 낮은 모습으로 일하신다. 일곱 영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하나님도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다.

7-10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곧 말씀을 받아든다.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받자 보좌에 둘러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말씀을 받으신 어린양 앞에 엎드려 거문고, 곧 찬양과, 향이 가득한 금대접, 곧 성도들의 기도로 새노래를 부른다. 새노래로 경배한다. (여기서 성도들의 기도는 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새노래의 내용은 ‘어린 양이 두루마리 말씀의 인봉을 떼기 합당하시다. 왜냐하면 어린 양이 일찍이 죽임을 당하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피로 사신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다. 그들에게 왕의 권세를 주시는 분이시다.’ 였다. // 새노래는 어린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며, 이 어린양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열방이 하나님나라가 되고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11,12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경배에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이 웅장한 합창으로 화답한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13,14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경배와 천군천사들의 합창에  이어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떼창을 부른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한다. // 13절 떼창. 요한은 천상의 예배? 환상을 보고 있는데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은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위와 땅아래, 바다위와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떼창으로 하늘의 찬양에 참여하는 것을 본다. 하늘의 예배에 지금 바로 이땅의 성도들도 참여한다는 뜻일 것이다. 미래에 하늘에서만 일어날 일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나의 찬양이 하늘에도 메아리 친다고 하신다. 아멘

 

요한계시록 4:1-11

일곱교회에 대한 주님의 편지는 모두 배달되었다. 주님은 일곱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셨다.

1 이일 후에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본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처음 요한에게 말씀하시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열린 하늘 문에서 들려왔다. “이리고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 일곱교회에 말씀하신 편지는 독자들의 세대에 바로 적용하도록 주셨다면 4장부터는 ‘이후’ 에 마땅히 일어날 일에 대한 말씀이라고 한다.

2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듣고 적어 나간다. 하늘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본다.

3,4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는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소개한다. 보좌는 무지개 모양의 녹보석으로 둘렸다. 보좌 주위로는 스물네개의 보좌가 둘려 있고 보좌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다.  // 흰옷을 입은 장로들은 사데교회에 하신 말씀처럼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주님과 동행한 합당한 자들일 것이다. 머리에 쓴 금관은 당연히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굳게 잡아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면류관일 것이다.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난다. (//영이신 삼위 하나님의 대화소리가 아닐까?)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 곧 일곱 영이으로 소개 된 성령님도 함께 계신다.

6-9 보좌 앞쪽으로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로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다고 묘사한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같다고 묘사하는데 에스겔을 읽을 때 나왔던 바퀴달린 수레와 흡사하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날개를 가졌다. 네 생물은 많은 눈을 가지고 있고 밤낮 쉬지 않고 ‘거룩’을 삼창한다. 물론 주 하나님, 전능하신 삼위 하나님, 곧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보좌에 앉으신 살아계신 삼위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

10,11 보좌 주위의 이십사 보좌에 앉는 장로들도 보좌에 앉으신 삼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삼위 하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신다. 장로들은 자신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것을 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 자기들의 관을 보좌 앞에 돌려드리며 우리 주 하나님이야 말로 영광과 존쥐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경배한다. 만물이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창조 되었다고 찬양한다. 만물이 삼위 하나님의 설계한 그대로 창조되었다고 고백한다.

//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환상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시작한다. 변함없는 삼위 하나님과 삼위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경배하는 네 생물과 이십사 보좌에 앉은 장로들의 찬양으로 시작한다. 요한에게 이 땅이 아니라 하늘, 곧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를 먼저 보여주신다. 만유의 주재의 다스림이 창조때부터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됨을 보여주신다. 요한은 박해로 밧모 섬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이 환상을 보았다. 회복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주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신다. 땅에서 하늘로 열린 문, 아니 주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문을 여시고 하늘나라를 보여주신다. 이 하늘나라, 곧 하나님나라가 이땅에도 온전히 이루어지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3:14-22

14 라오디에아 교회에 말씀하신다. 요한은 계시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소개한다. // 아멘이시요는 주님께서 ‘미쁘시다’는 뜻이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분이시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이시다’ 라는 소개에 묻히고 만다. ㅎㅎ

15,16 주님은 당연히 라오디게아 교회도 잘 아신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껍지도 않다고 책망하신다. 미지근 하지 말고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미지근한 라오디게아를 토하여 버리시겠다고 하신다. // 라오디게아 윗 지방에는(히에라볼리?) 온천이 있고 옆 지방에는 (골로새?) 냉천이 흐른다는 고고학적 발굴을 읽은 적이 있다. 라오디게아는 이 두지방에서 물을 끌어다 썼다고 하는데 온천수든 냉수든 라오디게아에까지 오면 온기와 냉기를 잃는다고 한다. 소금 맛을 잃지 말라는 교훈이 떠오른다. 소금 맛을 잃어버리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주님은 산위에서 가르치셨다.

17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자라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지만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지적하신다. //물질적 부요가 영적인 빈곤을 가릴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18 주님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신다. 불로 연단한 금은 불순물이 없는 순금을 말한다. 14k, 18k 가 아니다. 다시말해 순금을 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결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는 것이다. 세상의 물질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무엇인지 분별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말씀도 영안을 뜨라는 의미다. // 예수님은 산위에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라고 하셨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안약을 사서 바르듯 영적 건강을 위해 경건의 훈련을 하는 시간을 사야 (투자해야) 한다.

19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하신다고 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이유도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셔서 라오다게야 교회가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20, 21 주님은 책망의 노크를 하신다. 주님의 책망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면 주님이 들어오셔서 그와 더불어 식탁의 교제를 나누시겠다고 하신다. 주님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자가 이기는 자다. 이기는 자는 식탁의 교제뿐만 아니라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통치의 교제를 나누시겠다고 하신다. 주님께서 이기는 자의 본이 되셔서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이기는 자들을 대우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22 당연히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도 모든 교회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시다.

요한계시록 3:1-13

1 주님은 사데 교회에 말씀하신다. 요한은 주님을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으로 소개한다. 주님은 성령이 충만하시고 말씀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주님은 사데 교회도 샅샅이 아신다. 주님은 사데교회가 ‘살았다’ 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 라고 선언하신다.

2 주님은 정신차려서 죽게 된 상황을 깨닫고 (이미 소유한) 복음을 굳게 붙들라고 명하신다. 주님 보시기에 사데교회는 하나님앞에서 온전히 행하고 있지 않다고 하신다.

3 주님은 사데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받았고 어떻게 복음을 들었는지 생각하고 복음을 지켜 회개하라고 하신다. 일깨지, 곧 정신차려 깨어있지 않으면 주님이 도둑같이 다시 오실 때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4 (그러나. 반전에 감사) 주님은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명이 있다고 하신다.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합당한 자들이라고 하신다.

5 이기는 자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하신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을  아버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안다고 증언하실 것이다.

6 주님은 이 말씀도 사데 교회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들어야 한다고 편지를 맺는다.

7 이번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하신다. 요한은 주님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사람이 없는 분이라고 소개한다.

8 주님은 문을 열어 두셨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작은 능력은 어쩌면 사회적 영향력이 적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가 된 상황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9 열린문으로 들락날락  거리는 빌라델리아 교회에,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 마져도 굴복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시는 줄 저들이 알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10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환난가운데 참고 견디라는 말씀을 잘 지켰기 때문에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앞으로 닥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11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신다. 다시 오실 때까지 가진 것, 곧 복음의 말씀을 굳게 잡아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신다.

12 이기는 자를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벽체를 쌓은 벽돌이라면 모를까) 성전 기둥은 결코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더군다나 이 성전 기둥과 같은 이기는 자에게 새하늘 새예루살렘이라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새롭게 새기겠다고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온전한 성전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13 모든 교회에 하신 말씀이다. 모든 교회 모든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