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134

형제의 연합이 임마누엘의 증거요 우리이 찬송이다.

133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이다. 그래서 시인은 선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시인이 노래한 대제사상 아론을 타고 흐르는 보배로운 기름, 헐몬의 이슬을 내가 어찌 느껴보랴. 전혀 감이 없는 표현이다. 시인은 거기서, 곧 시온의 산들에 (하나님나라에) 하나님께서 복을 명령하셨는데 곧 영생이라고 한다. // 시인은 시온이, 하나님나라가 다른 곳이 아니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134 시인은 밤에 하나님의 성전에 서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노래한다. 성소, 곧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지어다 (칭찬하실지어다) 라고 선포한다. // 시인은 133편의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살아야 할 목적을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 134편에서 노래한다. 시온, 곧 형제가 연합하여 서로 동거하는 그 곳, 바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왜 밤일까?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시인이 주님을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것은 아닐까?

// 하나님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복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임마누엘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에서 “영생은 오직 한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인 것 같이 주님의 택한 백성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다. 형제의 연합은 임마누엘의 증거다. 임마누엘이 곧 영생이다.

임마누엘이야 말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다. 성도들의 진정한 찬양 역시 입으로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임마누엘의 삶이다. 주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 어찌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있으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야 말로 임마누엘의 증거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 4:20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