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5

성도들의 숨소리

순례자의 길의 종착점은 기쁨의 합창이다. 성도들의 할렐루야다.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을 찬송하겠지만 순례의 길 끝에 더 큰 기쁨의 찬송이 합창으로 울릴 것이다.

1 할렐루야. ‘너희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인은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노래하고,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라고 노래한다. // 곧 주님의 종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라는 뜻이다.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주님의 역사(일)를 통하여 우리가 할 것은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역사는 일치된다. 언행일치, 아니 명행일치라고나 할까?

2,3 순례길의 마침은 성전에서 기쁨으로 ‘할렐루야’를 하는 것이다.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다. //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선하심이 일치됨을 맛본다.

4-7 주님께서 자기를 위하여(4), 주님께서 그가 기뻐하시는(6) //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주님의 백성으로 택하심도, 주님께서 이땅 자연만물에 섭리하심도 주님을 위함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심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시인의 촛점은 주님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님만이 참 하나님(신)이시다. 창조주요 세상 주관자 이시다.

8- 12 시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부터 가나안을 차지하기까지도 주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주님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하신 것으로 노래한다. // 노래의 촛점을 주님에게서 우리에게로 바꾸지 않는다. 인생의 주어는 ‘나’가 아니라 ‘그’, 곧 하나님이시다.

13, 14 주님의 이름은 영원하다. 자자손손 할렐루야를 불러야 한다. 주님의 백성, 주님의 종으로부터 주께서 위로를 받으신다. // 부모가 자녀의 순종에 위로 받듯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주님의 종들의 순종을 흡족하게 받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15-18 열국의 우상은 은과 금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생명이 없다. 말도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호흡이 없다. 이런 우상을 만든자와 이런 우상에 의지하는 모든 자가 그것과 (우상과) 같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 시인은 ‘할렐루야’를 하지 않는 자는 호흡이 없다고 결론내린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죽었다.

19-20 이스라엘 족속아, 아론의 족속아, 레위족속아 할렐루야! 주님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할렐루야! // 베드로는 그의 첫번째 편지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아시아에 흩어져 순례의 길을 걷는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그러니 성도들이 이스라엘 족속이요 아론의 족속이요 레위족속이다. 곧 주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다. 할렐루야!

20 하나님은 주님의 이름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시겠다고 하셨다. 주님은 시온에서 찬송 받으신다. 할렐루야! //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하셨다.  순례길 시편에서 보았듯이 시온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장소, 지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곳이다. 성도들이 모인 곳이다. 교회다.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곳이다.

할렐루야! 성도들이 부르는 기쁨의 합창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