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4 (1-15)

1-7 다윗의 노래다. 반석이신 주님이 전쟁도 전투도 가르쳐 주셨다고 찬송한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생이 무엇이기에 반석이시요, 요새, 산성, 구원자, 방패, 피난처 되신 주님의 사랑을 받습니까? 라고 노래한다. 이런 다윗이 왜 갑자기 인생을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노래할까? 헛것, 그림자에 불과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주시길 간구한다. 산들이 주님의 임재의 상징인 연기를 뿜어낼 것이라고 노래한다.비록 전쟁에 능한 손으로 가르침을 받고, 전투에 필요한 무기를 잡는 손가락으로 훈련을 받았어도 결국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다윗이다. 주님께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달라고 노래한다.

8-11다윗의 적들은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허세로 오른손을 들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질대로 교만하지만 시인은 새노래로 (주의말씀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듯, 나의 찬양도 늘 새롭다)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로 찬양하겠다고 노래한다. 주님만이 왕들에게 (왜 복수를 사용했을까?)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하며 자신을 무서운 칼에서 건져주신 주님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반복해서 주님을 망령되이 부르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높아질대로 높아진 대적들을 고발한다.

12-15시인은 분위기를 확 바꿔 하나님나라를 노래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아름답게 자라는 나라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먹을 것이 풍성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나라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예배로 충만한 나라요 전쟁의 슬픔이 없는 나라다. 이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사는 백성이 복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백성이다. 외롭지 않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복이 있다.

// 주님께 훈련 받았다고 만사가 형통한 것은 아니다. 시인이, 곧 다윗의 노래는 만사의 형통은 주님의 임재에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다스림에 있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임마누엘이다. 늘 새로운 노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애3:21-25 새번역)